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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경제학자들의 실패” / 김재수

등록 2015-01-28 18:54

얼마 전 서울대 이준구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국의 이념적 지형이 이상하다는 지적을 하며, 자신이 진보적인 학자로 분류되는 것이 기이하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의 경제학 교수들은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은데, 유학을 다녀온 경제학자들 다수가 보수적이 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습니다.

보수적 경제학자들이 즐겨 지적하는 문제 중에 규제기관의 포획 이론이 있습니다. 조지 스티글러는 정부 정책이 공공의 이익이 아닌, 기업과 이익집단에 의해 영향을 쉽게 받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를 정부 실패라 부르며, 비록 시장 실패가 있다 하여도, 정부의 개입이 더 큰 실패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습니다.

정부의 포획을 비판하는 보수경제학자들은 과연 자유로울까요. 시카고대의 루이지 칭갈레스 교수는 경제학자들에 대한 포획 이론을 검증해 보았습니다. 경영진의 초고액 연봉이 생산성에 비해 지나친가 질문하자, 사회과학대보다 경영대에서 일하는 경제학자들이 관대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기업 이사들은 더욱 관대했습니다. 종신교수직 심사를 받아야 하는 조교수들도 상대적으로 관대했습니다. 흥미로운 점 하나는 외국인 경제학자들이 상대적으로 기업의 구미에 덜 영합하는 대답을 했다는 점입니다. 외국인은 어차피 기업 데이터를 얻기가 쉽기 않기에, 기업으로부터 자유로운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주류경제학자들, 특히 최상위권 대학으로 유학을 간 이들 대부분은 기업이 제공하는 상당한 액수의 장학금을 받고 다녀왔습니다. 경제학 유학생의 절대다수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입니다. 경제학은 유학생에서 차지하는 서·연·고 비중이 가장 높은 전공일 것입니다. 서·연·고 입학에 이어 유학의 길을 가기 위해서라면, 중산층 이상의 환경을 지닌 이들이 다수임에 틀림없습니다. 바로 이들이 초이노믹스에 대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무언의 지지를 펼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우리 경제학자들은 이를 두고 현대 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리낌 없이 인센티브에 따라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과 권력에 포획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양심과 거부할 용기를 지니지는 못했습니다. 우리 주류경제학자들의 이런 모습을 두고, “경제학자들의 실패”라 부르십시오. 시장 실패인가 정부 실패인가를 논의하기에 앞서 경제학자들의 실패를 토론의 전제로 삼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재수 미국 인디애나 퍼듀대 경제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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