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인생에 대한 찰리 채플린의 명언은 나에겐 전공인 ‘건축’에 적용됐다. 막연한 동경에 선택하게 된 건축이 전공이 되는 순간부터 나를 괴롭히게 된 것이다. 이상하게도 건축은 알면 알수록 더 어려워졌다. ‘건축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하던 2학년, 나는 답을 찾기 위해 여러 공모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학과 내 에이스로 꼽히던 한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는 건축이 뭐라고 생각해요?” “집 짓는 직업이지, 굳이 업종을 말하자면 서비스업?”
에이스다운 좀더 근사한 대답을 원했던 것일까, 돌아오는 대답에 실망한 나는 이내 곧 자리를 떴다.
그로부터 3년 뒤, 나는 5학년이 되어 졸업설계를 하게 됐다. 내 졸업설계의 주제는 서울성곽 주변지역의 공동주택이었다. 졸업설계를 하며 충격적이었던 점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문화재라고 생각했던 서울성곽이 주민들에게는 정작 애물단지와도 같다는 사실이었다. 성곽 주변에 산다는 자긍심을 가진 주민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서울성곽으로 인해 적용된 법적 제한 때문에 재산권 행사에 애로사항을 가지고 있었다. 성곽은 매우 가치 있는 문화유산이지만 가끔 찾아오는 관광객들과는 달리 주민들에게는 삶의 일부였던 것이다.
졸업작품 전시회 날, 내 결과물은 다른 친구들의 설계 작품들에 비해 이목을 끌진 못했다. 전시관같이 디자인 감각과 건축공간의 다양성을 뽐낼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닌 주택이었기 때문에 내 작품은 친구들보다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였다. 사실 내 작품의 설계 초반 디자인은 최종 결과물과 달리 디자인 기교가 많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주민들과 인터뷰를 하고, 주민회의를 통해 수렴된 의견들을 설계에 반영하다 보니 다소 밋밋한 디자인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하지만 졸업설계를 하면서 나는 건축가의 욕심보다 더 값진 것을 배웠다. 건축가의 자존심보다 중요한 것은 건축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편의이고, 건축의 중심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2년 전 선배가 건축이 서비스업이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서울시에는 광화문광장 복원사업과 서울역 고가도로의 공원화 등 다양한 건축적 현안이 있다. 서울시 총괄건축가 승효상은 한국의 역사적인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선 광화문과 돈화문 앞 율곡로를 활처럼 휘게 만들어 월대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역 고가를 공원화해 서소문공원까지 동서를 잇는 보행동선과 녹지축을 만들 계획을 발표했다. 건축학도로서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고려한 건축 제안을 반기는 바다. 그러나 이 사업과 정책들은 시민들의 합의가 없이 곧장 공론화가 되었다. 월대를 복원하게 되면 기존의 도로는 차량통행량의 분산을 위해 지하화가 불가피하다. 또한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를 위해서는 남대문시장 앞에 보행광장을 설치해야 한다. 시민들의 합의가 필요한 일임에도 갑자기 이런 정책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라는 비판을 얻게 되었다.
서울시가 건축의 이름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면 첫번째로 해야 할 일, 그것은 ‘시민들의 합의’여야만 한다. 이용하는 사람이 우선이 되지 않는다면 건축가의 소신은 때론 오만이 될 수도, 정책은 단지 허울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새겨야 한다.
김지은 인하대 건축학과 5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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