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의 택배 진출 사업성 검토로 촉발된 농협과 택배업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농협은 택배사업 진출을 통해 농민들의 물류비 부담을 덜고, 농촌지역의 택배비 인상을 억제하겠다는 전략이다. 우체국택배가 중단한 토요일 배송도 농협이 재개하겠다고 한다.
택배업계는 지난 1월20일 ‘농협의 택배진출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택배업계는 농협이 민간 택배기업과 달리, ‘농협법’을 적용받아 화물운수사업법(화운법)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이 어렵다고 토로한다. 민간 택배기업들은 화운법에 따라 노란색 사업용 번호판을 반드시 발급받아 택배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를 어기고 자가용 차량을 이용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반면 농협은 자가용 화물차를 이용한 유상운송이 가능하다.
현재 국내 택배기업 1위 업체는 씨제이(CJ)대한통운으로 택배 시장 점유율 38%를 차지한다. 이 중 ‘기업간 거래’(B2B) 물량이 90%를 넘고 있다. 한번에 10만건에 육박하는 대단위 물량을 계약하기 때문에 택배단가 역시 2000원대 중반으로 저렴하게 형성돼 있다. 실제 개인이 택배를 보낼 경우, 이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책정된다. 현재 농촌지역에 진출한 택배기업은 경동택배나 합동택배, 대신택배 등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정기화물을 취급하기 때문에 김치, 쌀, 옥수수 등 어떠한 품목이라도 배송이 가능하다. 택배가격은 평균 5000원 정도로 형성돼 있다. 집하부터 배송을 모두 책임지는 점을 고려할 때 비용이 결코 비싼 것은 아니다. 일본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경우 택배 건당 비용이 평균 5000원~1만원으로 책정돼 있다.
농협은 그간 농민을 앞세워 다양한 수익사업에 뛰어들었다. 농협이 보유한 자회사만 44개에 이른다. 농협이 거느린 자회사를 통해 농민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되물어볼 일이다. 농협은 이번에도 농민을 앞세워 택배사업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보면, 농민의 권익보호라는 명분으로 소수의 조합장과 영농조합법인의 이익을 채우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된다. 정기화물업체 고위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선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합장들의 요구를 묵살할 수 없기 때문에 택배사업 진출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농협이 택배사업에 진출하더라도 혜택은 소수의 농협 조합원들과 영농조합에 돌아갈 것으로 예견된다.
농협이 나서야 할 것은 택배사업 진출을 통한 ‘물류비 절감’이 아닌, 유통단계 투명화를 통한 농민들의 수익 증대와 농산물 수출 활성화다. 중국에 이어 베트남까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서 국내 농산물 수출의 활로가 열렸다. 하지만 농협은 적극적 대응책을 세우지 않고 뭉그적뭉그적거리고 있다. 지금 농협에 필요한 것은 ‘환골탈태’다. 농협이 바뀌어야 농민이 산다.
김동민 / 서울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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