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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500명의 빈자 있어야 부자 1명 있다는데 / 박얼서

등록 2015-02-09 18:38

뉴스 열어 보기가 겁부터 나는 세상이다. 갑질의 횡포가 위험수위를 넘어선 세상이다. 어느 날 갑자기 황금만능 혹은 물질만능이라는 괴물이, 영혼도 없는 그 괴물이 우리들 사회 속으로 슬그머니 숨어드는가 싶더니 이제는 마치 사람들의 도덕과 양심까지도 눌러 지배하는 세상이 된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이젠 아예 어쩔 수 없는 세상의 흐름이라며 자리를 탄탄히 굳혀버렸다.

‘황금만능’ 이 낱말 속에 숨겨진 은유를 놓고 잠시 고민에 든다. 예나 지금이나 돈의 힘을 가리켜 재력이라는 표현을 쓴다. ‘돈, 돈, 돈만 있으면 못 할 게 없는 세상이다’라는 의미는 그 막강한 돈의 쓰임에 따른 부작용을 미리 경고해 두려는 뜻이 더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긍정보다는 역기능적 폐단을 감시하려는 염려쯤으로 들리는 건 나만의 난청일까?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그 도덕성을 의심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시기하는 마음을 앞세워 이를 흠집 내기를 위한 목적도 단연코 아님을 밝힌다. 무려 400년 동안이나 만석의 재산을 지켜왔던 경주 최부자에겐 노블레스 오블리주(모범정신)가 있었다는 얘기를 잠시 꺼내고 싶었을 뿐이다. 오늘날 부자로서의 실추된 권위와 존경을 부자들 스스로 찾아 누렸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일찍이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가 비유로 들었던 표현을 잠깐 빌려 쓴다. ‘500명의 빈자가 있어야 한 명의 부자가 만들어진다’는 논리 말이다. 그 논리의 정확한 목적이야 이 자리에서 거론할 바 아니지만, 500명이라는 그 많은 빈자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단 한 사람의 부자라니, 이건 참 어마어마한 사회적 희생과 책임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양심마저도 속여가면서 마구 벌어들인 재물들이 떳떳지 못한 비자금의 신분으로 세상을 활보한다면, 상도(商道)쯤이야 눈 한번 딱 감아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경제적 약자들의 생계를 위협한다면, 사회적 양심과 윤리에 반하는지의 아무런 검증기능도 없이 이런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우리들 사회 전체의 몫으로 너와 나 각자에게 어김없이 분배되는 셈이다.

돈, 돈, 돈이란 게 대체 뭣이기에? 언제 적부터 이렇게 무소불위의 특권을 휘두른단 말인가! 몰염치한 만능의 요술주머니로 둔갑해 군림하느냐는 말이다. 갑자기 정확한 돈의 정의가 뭔지 궁금해졌다. 상품 교환의 매개물로서, 가치의 척도, 지불의 방편, 축적의 목적물로 삼기 위하여 금속이나 종이로 만들어 사회에 유통시키는 물건이라고 적혀 있다.

그렇다. 필요한 만큼의 재화나 용역을 구입하는 데 편리한 교환가치의 매개물이다. 그러나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돈을 함부로 남발한다는 점이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써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이는 성실히 벌어 그 쓰임새만큼은 사회적 윤리나 정의 그 합목적성에 어긋나지 않도록 신중하라는 의미였을 테다. 너무 없어서 걱정, 너무 많아서 걱정인 돈, 돈, 그놈의 돈 때문에 돌아버릴 세상이다.

그래서 돈이란? 벌어들이기보다는, 쓰기가 더 어렵다고 힘주어 강조했었던가 보다! 한마디로 소비행위의 참신성을 더 무겁게 예시해둔 셈이다. 무려 12대에 걸친 4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가문의 계율처럼 받들던 경주 최부잣집의 사회적 자존심이 바짝 그리운 오늘이다.

박얼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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