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마약성 진통제보다 링거주사가 낫다 / 황성현

등록 2015-02-12 18:52수정 2015-02-12 18:52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올해 중앙정부 재정적자는 33.4조원이다. 정부가 세금 등으로 걷는 돈보다 쓰는 돈이 33.4조원이나 많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 이후 재정건전성이 크게 악화되었다. 이명박 정부 5년간의 총 재정적자 규모는 99조원이고, 박근혜 정부는 135조원이다. 정부의 낙관적 전망치로 계산해도 이 정도다. 재정적자가 커지면 그만큼 나랏빚이 늘고 후세대의 부담이 커진다.

복지나 제대로 늘리면서 적자가 이렇게 느는 것도 아니다. 우리 경제력 수준은 물가 등의 차이를 고려하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도 이미 영국, 프랑스, 일본 수준에 거의 이르렀다. 그런데 우리 복지지출의 지디피 대비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절반 수준이고, 출산율, 노인빈곤율, 자살률 등 삶의 질 관련 지표는 늘 꼴찌다. 그런데도 정부 여당은 주로 복지지출 구조조정만 앞세운다.

며칠 전 접한 대통령의 인식 중 정말 잘못된 것이 있다. ‘경제만 활성화하면 세금이 자연히 늘어서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복지도 가능하다’로 해석되는 인식이다. 그러면서 증세는 반짝 효과만 있는 ‘링거주사’라 했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복지·교육 등이 제대로 돼야 저출산·고령화·양극화를 극복해서 경제도 살리는데, 그 재원인 세금이 그저 경제와 국민에게 부담을 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증세를 ‘제대로’ 안 하니 혜택도 못 주고, 경제도 살리지 못하면서 ‘꼼수증세’란 비판만 받는다. 증세란 부담 없이 복지란 혜택도 없다.

그런데 설령 정부의 방식대로 경제가 활성화돼도 세금은 소득이 늘어난 것에 거의 비례해서 늘어날 뿐이다. 이는 조세 총액을 지디피로 나눈 조세부담률은 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자(조세)와 분모(지디피)가 동시에 같은 비율로 늘어나니 말이다. 우리 조세부담률은 현재 17%대 수준이고, 정부 계획에 의하면 2018년에도 17.9%에 머문다. 오이시디 평균은 25% 수준이다. 조세에 사회보장기여금을 합한 국민부담률도 10%포인트 정도 낮다.

경제를 활성화시켜 세금을 자연히 늘려서, 그래서 이렇게 낮은 조세부담률을 유지해서, 대통령 말씀대로 국민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복지를 공고히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이시디 최하 수준의 조세부담률을 유지하면서 고령화로 급격히 늘어나는 복지수요를 감당하고, 선진국과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선진국들은 바보라서 세출 구조조정으로 대처하지 않고 국민에게 높은 부담을 지울까? 그들의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이 높기 때문에 복지 수준도 높은 것이다. 우리 국민은 언제까지 오이시디 꼴찌 얘기를 들어야 하는지? 조세부담률 제고는 복지와 교육뿐 아니라 굳건한 안보, 국민 안전, 꼭 필요한 경제개발 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증세 없는’ 정책은 안 그래도 낮은 조세부담률을 더 낮춘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을 유지시켰다. 그런 정책은 경제를 살리지 못하고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지 못했으며, 재정건전성만 악화시켰다. 정치권은 지출 혜택은 더 주고 세금은 깎아주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새누리당 정권처럼 감세는 신속히 추진하고, 이를 원상회복시키려는 증세의 의지는 없거나 약하다. ‘증세는 최후의 수단’이라는 말에는 그런 의중이 담겨 있다.

재정적자 확대를 정부는 ‘경제 살리기’로 포장했지만, 2008년부터 내리 적자인데 경제가 왜 살아나지 않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 경제의 최후 보루인 재정건전성을 훼손하는 것이 경제를 망가뜨리는 일이다. 큰 적자로 나라살림을 꾸리는 것은 연상해서 비유하자면 ‘마약성 진통제’ 사용 같은 것이다. 빚을 늘리는 것은 당장의 고통을 줄이고 반짝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진통효과가 사라진 후 몸은 더 망가지고 고통은 더 커진다. 현 상황에서 증세라는 링거주사는 꼭 필요한 지출의 확대를 통해 우리 경제에 기력을 회복시키고 건강한 사회의 기초를 제공할 것이다.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