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교육을 담당하는 장관의 신년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눈에 띄었던 것은 ‘대학 내 인문학과가 시장 수요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언급이었다. 대학생 취업난을 걱정해야 하는 장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 관련 학과 졸업생이 취업에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는 우리 모두가 다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학이 시장의 수요에 맞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인문학의 어떤 한계나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대학과 우리 사회가 이해하고 지켜내야 할 본질이다. 따라서 문제는 인문학이 시장의 수요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이 왜 본질적으로 시장의 수요에 맞을 수가 없는 것인지를 이해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간과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문학과가 다른 학과에 비해 시장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지 못한 이유는 인문학이 처음부터 그런 학과들과는 다른 차원의 논의를 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다른 주제가 아니라, 다른 차원이다. 왜냐하면 인문학은 다른 학문들이 의심 없이 사용하는 이론적인 개념들 자체를 끊임없이 재규정해서 그들에게 개선된 개념들을 제공해야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소위 시장의 수요에 맞는 실용적인 학문들은 본질적으로 자신들이 사용하는 이론적인 개념들의 비판과 수정에 더디다. 왜냐하면 그들은 현상에 개념들을 다양하게 적용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미 만들어진 개념의 소비자다. 반면 인문학은 개념들 자체를 주제화해서 진단해야 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의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은 한 단계 더 나아가 그렇게 사용되고 있는 개념의 비판뿐 아니라 새로 사용되어야 할 개념을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보니 특히 철학책들은 세상과 관련 없어 보이는 말들로 가득 찬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모두 인문학에 대한 약간 깊이 있는 생각을 가져보자. 인문학은 실용적인 학문들에 기본개념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그러한 학문들은 인문학적인 개념들에 기대어 비로소 시장의 수요에 맞는 학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시장의 수요에 맞는 학문들, 학과들이 있다는 것은 인문학이 시장의 수요로부터 거리를 두고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대학 내 인문학과들의 구조조정이라는 것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피할 수 없다면 부디 해당 결정권자들이 ‘인문학을 위한 약간 깊이 있는 변명’을 기억하고 그에 맞는 약간 깊이 있는 대안들을 마련해 주었으면 좋겠다.
박일태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 철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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