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등법원 판결은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개입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향후 대법원의 최종심 판결에 관계없이 대한민국이 과거에 경험했고, 현재 경험하고 있으며,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도 여전히 경험할 우리 현대정치사의 굴레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박정희 시대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오는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수를 자처하는 표창원 교수가 교수직을 사임하면서까지 국정원을 비판하고, 김동진 부장판사가 2012년 대선에서 여야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았다고 설파하면서 국정원의 대선 개입 무죄 판결을 “지록위마의 판결”이라고 비판한다. 이것이 ‘현실 속의 국정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 이명박 정부 동안 정보기관장의 대통령 독대보고가 “‘국가안보’보다는 ‘정권안보’에 치우칠 수 있다”는 신념을 피력했다. 그러나 정보기관장의 대통령 독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정보를 대통령에게 제공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정권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정보를 제공할 경우 독대는 오히려 필요한 것이다.
초대 이스라엘의 총리(1948~63)이며 건국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벤구리온과 함께 15년 동안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책임자를 역임한 하렐의 상호 깊은 신뢰관계는 1948년 독립 후 불안정한 이스라엘의 안보와 안전을 굳건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이었다. 정보기관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때만 그 역할과 중요성이 부각되는 것이다. 이것이 ‘상상 속의 국정원’이다. 언제쯤 ‘상상 속의 국정원’이 ‘현실 속의 국정원’으로 탈바꿈할까?
조성권 한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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