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일 대전 유성에서 시작해 서울 광화문까지 ‘탈핵희망 국토도보순례’를 하는 중이다. 월성1호기는 탈핵 순례 내내 초미의 관심사였다. 2월12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월성1호기 계속 운전 여부를 심사, 결정하는 날이었다. 바로 전날 경기도 오산에서 1차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피곤했지만 아침 일찍 원안위가 있는 서울 광화문으로 나갔다. 경주 지역주민들은 월성1호기의 수명 연장을 막기 위해 상복 차림으로 새벽부터 매서운 칼바람을 맞고 있었다. 이날 원안위는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26일 차기 회의에 안건을 재상정, 논의하기로 했다.
핵발전소 정책, 이제는 진실을 인정하고 순리대로 결정할 때다. 안전한 핵발전소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진실이며 탈핵이 순리다. “핵발전소, 우리가 책임지고 안전하게 관리하겠다.” 세상 어느 누구도 이렇게 장담할 수 없다. 이 주장은 핵발전의 실체에 대한 무지나 은폐를 뜻할 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핵발전소의 안전은 결코 확보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어떤 정부도 책임질 수 없다. 핵발전소는 그 자체로 인류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영구적이고 치명적인 위험물이다. 핵분열로 세상에 없던 200여가지의 방사성물질이 생성되는 것이다. 성서의 선악과 이야기를 기억하자.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죽는다.” 선악과는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근본적인 한계를 가리킨다. 우리는 이 한계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감당할 수 없다. 죽음이다.
사고 유무에 관계없이 핵발전소는 인간의 한계를 훌쩍 넘어선다. 핵발전소 사고가 나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바로 우리의 현실이 된다. “그런 사고는 우리나라 핵발전소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거짓말이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듯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도 완전하지 않다. 고장이나 사고가 나도 우리가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는 것, 그런 것이 인간에게 적절한 기계요 설비다. 고장과 사고의 결과를 감당할 수 없는 핵발전소, 결코 인간이 만들어서도 사용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백보 양보해서 핵발전소 사고가 없으면 괜찮을까? ‘원자력안전기술원’의 주장처럼, 지질과 해일 등 극한의 재난에도 불구하고 월성1호기의 안정성에 문제가 없다면 계속 가동해도 될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해마다 수백톤씩 쏟아져 나오는 고준위핵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처리 기술? 세상 어디에도 없다. 영구적인 보관 장소? 없다. 핵발전소 내에 임시 저장소가 있을 뿐이다. 그것도 이르면 2016년에 포화상태가 된다. 게다가 천연우라늄을 사용하는 월성 핵발전소는 다른 곳에 비해 4배 이상의 사용후핵연료를 배출한다.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된 정부는 2013년 10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이 사회적 논의가 의미 있으려면 탈핵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럴 때에 우리가 떠안아야 할 사용후핵연료의 총량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핵, 어렵지 않다. 첫째, 노후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을 통한 계속 운전을 포기한다. 둘째,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전면 중단한다. 셋째, 전기 수요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필요한 대체 에너지를 개발, 확보한다. 탈핵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 정책적 의지의 문제다.
원안위는 핵발전소에 관해서 오직 안전만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면 월성1호기에 대한 결론은 이미 내려진 셈이다. 원안위 위원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깊이 새겨보아야 한다.
조현철 예수회 신부·서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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