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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박 대통령이 5월 모스크바에 가야 할 이유 / 박종수

등록 2015-02-23 18:50

박종수 중원대 교수·전 주러시아 공사
정부가 오는 5월 러시아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이라고 한다. 이는 무엇보다 최근 미국의 국가안보회의(NSC) 관리(부보좌관)가 부정적 입장을 피력한 데 연유한 듯하다. 한국 외교가 미·중 간 대립에 이어 미·러 간 ‘신냉전’ 틈바구니에서 또다시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첫째, 주권국가의 대외정책 수행은 그 나라의 고유권한이다. 만일 박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압력에 밀렸다는 오해가 제기될 수 있다. 미국은 전통적 우방이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새로운 동반자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미국의 대러시아 경제제재 조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이를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에게 미국 쪽 구심력이 훨씬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래적 관점에선 러시아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구한말을 방불케 하는 합종연횡의 21세기 동북아 정세 속에서 외교적 균형감각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당시 중국 외교관 황준헌은 <조선책략>에서 ‘친중국, 결일본, 연미방’ 하여 러시아의 남하를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결과는 아관파천이라는 정반대의 역사적 상황으로 이어졌다. 북한 정권이 지난 70년간 러시아와 중국을 상대로 펼쳐왔던 외교적 수완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둘째, 러시아와 우리만의 특수한 관계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의 대표 브랜드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나 ‘나진-하산 물류프로젝트’는 러시아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도 마찬가지다. 이와 함께 블루오션인 북방경제의 지평도 넓혀 나가야 할 입장이다.

1990년 한-러 수교 직후처럼 러시아를 대북 창구로만 활용하려 했던 외교적 우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박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이 남북한 정상회담 개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대러 경제제재 조처에도 불구하고 부산시는 최근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북·러 합작회사인 라손콘트란스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경제위기 타개를 위한, 당연한 투자활동이다.

셋째, 이제는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중재 노력에 화답할 때다. 푸틴은 2002년 8월 2차 남북정상회담의 극동지역 개최를 주선했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만 참석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불참해 무산됐다. 2005년 8월에도 푸틴은 김정일의 동의를 얻어 때와 장소와 형식에 구애됨 없는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했으나 우리 쪽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번이 세번째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동의한다면, 정상회담을 반드시 5월 전승기념 행사장에서 개최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전승기념일 전후로 제3의 장소에서도 가능하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푸틴 대통령에게 진지하고 성의있는 답변을 해야 한다. 푸틴은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2013년부터 연속 2년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넷째, 박 대통령은 이번에 ‘통일 대박론’과 함께 남북관계 개선 희망의 신년 메시지에 대한 실천의지를 국민 앞에 보여줘야 한다. 그것만이 지지율 30%대의 레임덕 블랙홀에서 탈피할 수 있는 길이다. 올해 후반부터 국내 정국이 총선과 함께 개헌 모드로 전환되면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공간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자칫 ‘선친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만을 떠올리게 하는 ‘딸 대통령’으로 임기를 끝낼 수 있다.

2015년 새해에도 북-중 관계는 여전히 소원하고 상대적으로 북-러 관계가 급진전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의 대러 채무 110억달러 중에 100억달러를 탕감해 줬고, 루블화를 양국간 결제통화로 사용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북한은 나진항에 러시아 군함의 정박을 허용했다. 북한이 군사동맹조약을 체결한 중국에도 부여하지 않은 특혜다. 그러나 러시아의 북한 철도 개보수 프로젝트는 착수와 동시에 국제유가와 루블화 폭락으로 완만한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박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답보상태의 대북관계를 호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니 주저없이 가라! 다만, 한반도의 지정학적·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해 민족 내부의 의지와 주변국간 역학관계를 절묘하게 조화시키는 ‘줄탁동기’(알에서 나오기 위해 병아리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는 일)의 외교적 지혜를 발휘할 것을 당부한다.

박종수 중원대 교수·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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