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고용노동부가 일부 언론을 통해 대기업 노조의 ‘고용세습’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대기업 노조들이 기득권을 이용해 ‘현대판 음서제’를 누리고 있으며 이것이 청년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는 한국노동연구원이 진행한, 아직 완료되지도 않은 연구를 바탕으로 해서 나온 결과물이다. 이들은 ‘우선채용’ 조항을 들어서 이른바 ‘귀족노조’의 세습을 비판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노동조합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애초 고용부의 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 사실 단체협약서를 분석한 자료는 통계자료에 불과하다.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노동자들의 진짜 현실을 알 수 없다. 발 한 번 삐끗하면 나락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사회 안전망, 대학을 거치고 유학까지 다녀와도 취직이 잘 되지 않는 현실까지, 우리 사회의 실제 모습을 ‘총체적’으로 고려할 때, 우선채용 조항에 대한 분석은 연구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럴 때 이 연구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정책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우선채용’ 조항 대부분이 1) 정리해고자 혹은 그 직계가족을 우선 채용하거나 2) 산업재해 등으로 직무가 불가능한 자의 직계가족을 우선 채용하는 내용이다. ‘가장’들이 직업을 잃었을 때 가정 전체가 붕괴되어 버리는 한국 사회의 불안을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시각 속에서만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들이 시작될 수 있고, 의미 있는 정책들이 나올 수 있다. 비유하자면, 제시된 자료들은 단순히 ‘증상’들에 대한 보고서다. 의사는 이를 토대로 본질적인 문제, 즉 이런 증상들을 만들어내는 병이 무엇인지 진단해야 하고 치료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고용부가 하는 일은 마치 안색이 안 좋다며 얼굴을 탓하고 코피가 자주 난다며 코를 탓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만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연구 결과를 통해서도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고민을 담은 정책들이 충분히 도출될 수 있다. 고용 안정성과 일자리의 질을 높이고,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충분한 복지를 제공하는 등의 정책들 말이다.
고용부의 여론전은 ‘중규직 도입’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등 박근혜 정부의 ‘노동 악법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들은 박근혜 정부를 위해, ‘말 많은’ 노동조합을 약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정권 초기에 철도노조, 전교조 등에 그랬듯이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학도인 나는 노동조합에 대한 부당한 공격에 함께 맞설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학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학문이고, 이러한 개개인들의 노력과 연대야말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준희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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