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명절도 언제나처럼 여자들이 바빴다. 전을 부치고, 나물을 예쁘게 그릇에 담는 사람은 고모, 엄마를 비롯한 여자들이었다. 마실 물 하나도 남자들의 손을 거쳐 상에 오르는 법이 없었다. 엄마들이 허리를 접었다 폈다 반복하는 순간에 아빠들은 깎아놓은 과일을 우아하게 드실 뿐이다. 친가보다 덜 가부장적인 외갓집 남자들조차 쉽게 부엌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고모, 이모들도 분명 고모부, 이모부와 마찬가지로 경제활동을 하시지만 아직까지 명절날 가사노동은 여성들의 몫으로 보인다. 퇴직 후 형식적인 ‘집사람’으로 자리매김하신 이모부도 실질적인 집안일과는 거리를 두시는 듯했다.
혹자들은 반문한다. 그래도 세상이 많이 바뀌어 가사노동이 부부의 공동부담인 것을 잘 인지하고 있는 남자들이 많아졌다고 말이다. 텔레비전을 틀면 남자들이 요리를 하고,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또한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늘어나는 현상 역시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변화와 발전된 제도의 결과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면 수긍이 가는 견해다. 확실히 부모님 세대와 달리 내 또래 젊은이들은 가사 분담을 당연시하는 비율이 높다. 또 ‘현모양처’를 신붓감으로 바라거나 또는 현모양처 되기를 소망하는 젊은이들을 찾기 힘들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을, 현실을 바꾸는 속도가 더디다는 점이다. 아무리 ‘요즘 세대’라 한들, 명절날 부엌에서 바쁜 엄마들을 보고 자란 20대들이라면 가사노동의 부담은 성별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게 마땅한 것으로 여기기 쉽다. 아직까지 명절 증후군을 호소하는 건 며느리들이고, 양육 문제로 사표를 던지는 회사원은 대개 여자다. 최근 조사에서 초·중생들이 ‘교사’를 최고로 선호하는 직업으로 꼽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교사는 남녀 모두에게 1위 직업으로 선정됐지만, 실제 여학생이 교사를 선호하는 비율은 남학생보다 2배 높았다. 타 직업에 비해 여유 시간이 많은 교사는 그만큼 양육과 가사노동을 할 여력 역시 많다고 볼 수 있어서다. 현장에서도 여교사 비율은 70%를 웃돈다. 그러나 여교장의 비율이 10% 미만이라는 사실은 아직까지도 갈 길이 먼 우리의 현실을 증언한다. 여초를 보이는 직업군에서조차 여성 고위직 승진이 예외적인 상황이다.
이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남녀평등’ 문제가 새삼스러워서가 아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출산율을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영국, 프랑스, 스웨덴같이 높은 출산율을 보이는 국가들은 여성 고용률 역시 높다. 여성이 일을 하고 출산을 하는 동기는 각각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양육,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이 줄어드는 환경은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다. 충분한 출산 휴가를 남녀 모두에게 부과하고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할 때 여성 노동 참여와 출산율이 올라가는 이유다. 일찍이 오이시디 보고서는 육아정책이 개선될 때 합계 출산율이 올라간다고 밝힌 바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장려와 가사노동의 공동 부담은 남녀평등이라는 정의(正義)를 넘어선다. 이는 저출산 국가로 진입하면서 국가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이 도전받는 가운데 우리에게 주어진 무거운 과제다. 의식과 제도, 무엇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명확한 것은 가부장적 사고가 천천히 거둬지고 제도가 느리게 발전하기에는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당장 몇 년 후 명절 모습이 올해와 별반 다르지 않다면, 한국의 초저출산을 개탄하는 기사는 계속 지면에 등장할 것이다.
이지민 서울시 강북구 수유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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