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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천안함 진상규명 방해한 청와대 / 김광섭

등록 2015-03-25 19:06수정 2015-03-25 19:06

천안함이 침몰한 지 5년이 됐지만 과학적 논쟁은 여전하다. 민군합동조사단(합조단)이 침몰했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사용한 많은 증거들을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았거나 틀리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합조단은 폭발 장소 근처에서 인양된 어뢰추진체, 추진체에서 발견된 ‘1번’ 글씨와 천안함과 어뢰추진체에서 발견된 알루미늄이 주성분인 백색물질(흡착물)들이 북한어뢰설의 결정적인 증거라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성급하게 발표했다. 하지만 합조단이 제시한 증거들은 이전에 범죄행위를 증명하기 위해 쓰인 적이 없고 연구도 되지 않았다. 합조단은 이 증거들을 철저하게 분석하지 않고 성급하게 북한을 범인이라고 지적했다. 합조단의 분석 결과는 북한어뢰설을 지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부정하기까지 한다.

그에 반해 천안함 침몰 다섯달 뒤 합조단이 발표한 보고서에는 새로운 증거들 또는 결과들이 포함돼 있다. 백색물질들을 분석하여 얻어진 열분석 자료는 합조단이 이미 발표했던 백색물질에 관한 결론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합조단은 북한어뢰설을 부정하는 자신의 조사 결과들도 무시했다. 예를 들어 합조단은 에이치엠엑스(HMX), 아르디엑스(RDX), 티엔티(TNT)와 같은 폭약을 천안함의 여러 곳과 어뢰추진체가 인양된 해저 근처에서 수거된 모래와 가방 등 여러 물품에서 검출했으나(합조단 보고서 28쪽, 115쪽) 폭발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인양된 어뢰추진체에서는 폭약들을 검출하지 못했다(199쪽). 이 결과는 폭발설을 지지하지만 이 어뢰추진체가 폭발에 의해서 어뢰에서 분리되지 않았고 따라서 천안함 침몰과는 관계가 없음을 나타낸다.

필자는 2012년 봄에 한국화공학회의 초청으로, 합조단과 비합조단 과학자들의 백색물질의 정체와 기원, ‘1번’ 글씨의 진위성과 연소성, 버블온도 등에 과학적 오류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려고 제주도에 갔다. 그러나 학회는 내 논문 발표를 취소했다. 논문 내용과 발표 시기를 알고 있었던 국방부(기무사)가 내 발표에 합조단 조사 결과를 비판하는 내용이 있어 대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구실로 화공학회에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취소된 내 논문의 내용을 보도한 <한겨레> 기사에 대해서 국방부 관계자는 합조단이 해산되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내가 지적한 합조단의 오류에 대해서 해명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없다고 한 사람들이 다른 과학자들이 제기한 과학성이 결여된 비판에 대해서는 직접 또는 국방부 대변인을 통해서 해명을 해왔다.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나 국방부가 오류를 인정하고 바로잡으려는 양심과 용기가 없는 것이 아닌가?

천안함 조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청와대가 천안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조사 일정을 잡고 조사 결과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국방부가 합조단을 조직하고 지휘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청와대와 국방부가 합조단의 부실한 조사에 책임이 있다. 한국 정부는 합조단의 부실한 조사 결과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가져가서 웃음거리가 됐다. 그런데 합조단은 한 인사를 명예훼손으로 고발하여 재판이 몇년째 계속되는 모양이다. 부실한 조사로 명예를 스스로 잃었던 합조단이 어떻게 이 인사가 명예를 훼손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국방부가 이 재판을 위해 써온 인력을 진상을 밝히는 데 썼더라면 합조단의 명예를 찾아줄 수는 없더라도 국방부의 명예는 좀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명예훼손 재판의 목적은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다.

김광섭 재미 과학자·전 미 과학재단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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