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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홈플러스 사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 / 성춘일

등록 2015-04-06 18:51수정 2015-04-06 18:51

지난 1월 말, 대형마트인 홈플러스의 개인정보 유출사건은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보이스피싱과 모바일, 인터넷 금융사기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에서 관리상 실수가 아닌 눈앞의 이익을 위해 고객 정보를 팔아넘긴 홈플러스의 행위는 범죄 이전에 고객들에 대한 심각한 배신행위이다.

더욱 어이없는 것은 홈플러스의 뻔뻔한 태도이다. 홈플러스는 사과 외에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들에 대해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1년 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 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심지어 소비자단체들이 집단분쟁조정신청을 하면서 개인정보 보호법을 근거로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들이 유출된 정보와 유출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이에 대해 삭제되어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사실상 거절했다.

2013년 11월께 미국에서도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인들이 엄청나게 쇼핑을 하는 추수감사절 기간, 해커들이 미국 대형 유통업체인 타깃의 매장 내 설치된 피오에스(POS) 단말기에 악성코드를 유포한 것이다. 이로 인해 당시 고객들의 신용카드 계좌, 카드 유효기간, 카드 뒷면 보안코드(CVC) 등 신용·직불카드 정보 4000만여건이 유출되었다. 이름·이메일·전화번호·사회보장번호 등을 포함하면 거의 1억1000만여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이 사건으로 타깃의 최고경영자 그레그 스타인하펠과 최고정보관리책임자 베스 제이컵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타깃은 이 사건 이후 피해 고객들에게 신용카드 감시 및 명의도용 방지 프로그램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보안 시스템을 강화했다. 지난 3월20일 개인정보 유출 사건 피해자들에게 총 1000만달러(약 112억원)를 배상하겠다는 합의안을 연방지방법원에 제출했다. 합의안에는 최고정보보안책임자를 임명하고 보안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방안과 직원들의 사이버 보안 교육,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의 보안 유지 계획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타깃이 착한 기업이어서 이와 같은 행위를 한 것일까? 미국에는 집단소송제도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포괄적 증거개시제도라는 것이 있다. 타깃의 1000만달러 제안은 위 사건으로 신용정보가 유출된 피해자 4000만명의 집단소송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만약 홈플러스가 미국에서 고객의 개인정보를 팔아넘겼다면 홈플러스는 엄청난 규모의 집단소송을 당했을 것이다. 피해자들을 위해 어떠한 조처도 취하지 않았고 유출 관련 증거를 훼손하였으므로 징벌적 손해배상과 증거개시의무 위반이 문제가 되어 천문학적인 피해금액을 배상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그동안 수차례 집단소송제 도입이 논의되었으나 소송 남발을 이유로 번번이 무산되었다. 또한 피해자들이 겨우 용기를 내어 소송을 제기해도 패소하기 일쑤였다. 사건과 관련된 대부분의 증거를 기업이 보관하고 있거나, 기업이 증거를 인멸해도 재판 과정에서의 입증은 여전히 피해자들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증거의 구조적 편재라고 하는데 미국은 증거의 구조적 편재를 해결하기 위해 포괄적 증거개시제도를 두고 있다. 그래서 기업이 사건 관련 증거를 가지고 있음에도 제출하지 않은 경우 기업에 소송상 엄청난 불이익을 준다.

우리 법원은 또 기업의 책임 인정에 매우 인색하다. 인정하는 경우에도 다양한 사유를 들어 손해배상액수를 깎아 주기 바쁘다. 이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번 있었으나 기업들의 부담을 이유로 도입되지 못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면 불법행위를 저지른 기업이 일시적으로 큰 부담을 져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부담 때문에 기업은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불법행위를 자제할 것이며 다른 기업들도 이를 본보기 삼아 불법행위를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다양한 사회적 위험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오늘날 커피전문점에서 화상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회용 컵의 덮개와 컵 표면에 끼우는 종이밴드는 한 할머니가 맥도널드에 청구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맥도널드가 직접 손해배상금 16만달러와 징벌적 손해배상금 48만달러를 지급하게 되면서 보급된 것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한다. 고객과의 신뢰조차 헌신짝처럼 여기는 기업윤리가 판치는 이 시점에도 다수의 피해자가 일일이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현재의 소송 체계, 증거의 구조적 편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지 않는 사법부의 태도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이번 홈플러스 사태와 같은 사건은 반복될 것이다.

성춘일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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