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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세월호 유가족의 성장과 국가의 퇴행 / 김순천

등록 2015-04-22 18:40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성복이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1주기 아들의 기일에 성복이 어머니는 경찰에 밀려서 갈비뼈 4대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다. 폐에 피가 고여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팔순의 친정어머니는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딸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마디 했다.

“그렇잖아도 자식 잃어 힘든 사람을 왜 이렇게 만들어놓는다요.” 성복 어머니는 나이 많으신 어머니를 걱정 끼쳐 드리는 게 미안했는지 씁쓸한 미소만 짓는다. 성복이 아버지는 그날 어머니 곁을 지켜주지 못해 사고가 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으로 침대 끝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저희가 먹고사느라 바쁘게 살아 다른 사람들처럼 성복이에게 잘해 주지 못했어요.” 반월공단의 중장비 부품회사에 다니는 아버지와 요양사로 일하는 어머니는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어떤 때는 일하고 가면 성복이가 볶음밥과 스파게티를 해준 적도 있었다. 마음이 여리다고 걱정했는데 그게 여린 게 아니라 따뜻함이었고 사려 깊음이었다는 것을 장례식장에 친구들이 많이 찾아온 걸 보고서야 알았다고, 친구들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눈물을 흘렸다. 성복이 어머니가 입원한 병실 앞에는 광화문에서 머리를 다쳐 실신했던 서동진 어머니가 누워 있었고 또 다른 병실에는 몸을 많이 다친 김소정 어머니가 입원해 있었다. 아직도 어린 날의 딸의 손을 잡고 다 커서 사라진 딸을 찾아 꿈속을 헤맨다는 어머니들, 비 오는 날을 좋아했는데 딸 장례식날에 비가 와서 이제 비만 오면 딸 방에 앉아 울음을 삼키는 부모님들. 아직도 물속에서 헤매다 호흡 곤란으로 응급실로 실려가는 어머니들,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는 많은 어머니들. 어떻게 이런 자식 잃어서 너덜거리는 고통스런 몸에 손을 대는가. 그렇잖아도 1년 동안 잦은 집회, 서명운동, 도보행진 참가하면서 어머니들의 몸은 몸이 아니었다. 그런 어머니들을 방패로 때리고 밀어넘어뜨리고 경찰서로 연행까지 하는가.

‘인간의 끝을, 세상의 밑바닥을 한꺼번에 다 봤다’는 어머니들은 1년 동안 많이 성장해 왔다.

“지난 1년 동안 제가 깨달은 건 사회에 진정한 어른들이 많지 않다는 거였어요. 저도 우리 수현이, 내 가정만 챙겼던 거죠. 이렇게 생각하게 되기까지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나이만 먹은 어른이지 진정한 어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이를 잃고 나서야 사회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됐어요…. 이렇게 활동하면서 알게 된 게, ‘내가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진짜 시민으로서 행동한 적은 없었구나’, ‘잘못된 일에 대해서 침묵하고 비겁하게 산 대가가 정말 혹독하게 왔구나’ 이런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젊은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요. 이런 사회를 물려주면서, 그들에게 싸워 달라고 하는 자체가 어른으로서 철면피 같고요. 나처럼 부끄러운 어른이 되지 말라고.” -박수현 어머니 이영옥

부모들은 처절한 자신의 아픔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하고 성숙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성장을 통해 타인의 상처와 아픔이 자신의 것임을 보았다. 이렇게 부모들이 성장할 동안 국가는 오히려 퇴행을 했다.

어떻게 국가가 국민들의 의견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공권력을 동원하여 감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가. 이런 낡고 진부한 지형으로는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제는 국가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싶다. 국가의 성장을 보고 싶다. 국민이 의사를 표현하면 진지하고 겸손하게 들어주는 국가, 국민이 집회를 하면 작은 의견이라도 귀를 기울여줄 줄 아는 국가, 국민의 아픔과 고통에 함께 아파해주고 공감해주는 국가, 그 아픔을 받아 세상을 변화시키는 국가. 그런 ‘감정적이고 신체를 갖고 공감을 하는’ 국가를 원한다. 오늘날 요구되는 권력은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다른 사람들의 욕구와 요구에 응답하는 권력이다.’ 자기 독백적인 권력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다. 사회적인 현실의 지평을 새롭게 확장하고 변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이전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다. 더 이상 악의 반복은 필요 없다.

김순천 <금요일엔 돌아오렴>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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