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장학금’은 ‘근로’와 ‘장학금’ 두 단어를 합쳐서 만든 표현이다. 근로는 일을 한다는 뜻이고, 장학금은 성적이 우수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 또는 연구자에게 공부를 하라고 주는 장려금, 보조금을 뜻한다. 근로장학금이 정말 근로장학금이라면 이 두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 그러나 근로장학금은 사실 장학금이 아니다. 사람을 속이는 이 표현을 쓰지 말자.
2014년 서울의 한 대학원 문과대 등록금이 약 460만원이었다. 이 대학은 학생이 학과 사무실에서 6개월 동안 주당 20시간, 즉 총 450여시간을 사무직원으로 일하면 등록금을 면제해 준다. 시급으로 약 1만원을 받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을 근로장학금이라고 부른다.
일하고 돈을 받으니까 근로라는 표현은 적절해서 문제 삼을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이것이 정말 장학금인지 따져 보자. 학생은 등록금을 내기 위해 공부와 관련 없는 사무를 보고 돈을 받는다. 즉 일한 대가로 임금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버는 것과 같다. 그런데 여기에 장학금이라는 말을 붙인다.
이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 예를 하나 들어 살펴보자. 대학원생 철수가 중학생 은주에게 ‘나 이번 학기에 장학금으로 460만원을 받았어’라고 말하고는 ‘그런데 450시간 일하고 받은 장학금이야’라고 덧붙인다면, 은주가 말은 하지 않더라도 내심 ‘그게 무슨 장학금이야’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근로장학금은 학생을 보조해 주는 돈이 아니다. 학생은 일한 대가를 받을 뿐이다. 그리고 돈은 받지만 일한 만큼 공부할 시간이 줄어든다. 그러므로 더더욱 공부를 장려한다는 의미에서 벗어난다. 다시 강조하지만 공부하라고 학생에게 ‘보조’해주는 돈, ‘도움’을 주는 돈이 장학금이다.
현재 ‘근로장학금’을 받는다는 것은 단지 학교에서 일하고 받은 돈을 학교에 다시 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장학금’이라는 말이 붙어 있기 때문에 대학원생들은 자기가 직원으로 일을 하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아 놓고서도 마치 학교에서 혜택이나 도움이라도 받은 것처럼 생각한다. 더 심각한 것은 교수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학교가 의도적으로 ‘근로장학금’이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이든 아니든 잘못된 용어를 사용하면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들조차 이렇게 잘못된 사고를 하게 된다.
학교가 학생에게 일을 시키고 돈을 주는 것에 ‘근로장학금’이라는 말을 붙이려면 최소한 그 일은 학업과 관련된 일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근로’와 ‘장학금’의 의미가 상충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대학이 학생에게 급여를 지급한다는 이유만으로 장학금이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현재 근로장학금이라고 하는 건 사실 장학금이 아니다. 말은 제대로 써야 한다. 그냥 임금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차라리 근로금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언어를 오용해서 학생들을 기만하지 말자.
한재호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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