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에 상처가 났다. 찢겨진 살갗이 덜렁거리며 붙어 있었고, 피가 흘러나왔다. 당장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발라야 했지만 따가울 거라는 두려움에 오랫동안 망설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은 더욱 심해졌고, 더 이상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상처가 곪으면 문제가 더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겨우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다.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라고 했던가. 그날부터 모든 신경이 다친 팔에 쏠렸다. 밥을 먹을 때도, 씻을 때도, 잠자리에 들 때도 온통 신경이 쓰였고 모든 동작이 조심스러웠다. 엄마는 엄살 피우지 말라고,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가만히 놔두면 알아서 낫는다고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다고 느껴졌을 때, 나도 모르게 휘두른 팔이 책상과 부딪혔다. 그때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다 나은 줄 알았던 상처는 ‘어림없는 소리’라고 외쳤다. 어느 날 갑자기 팔에 난 작은 상처가 아물 때까지 나는 모든 신경과 관심을 그곳에 쏟으며 따끔거리는 소독을 하고 약을 발라야 했다. 그럼에도 상처가 난 자리에는 흉터가 생겼고, 그것을 볼 때마다 피가 나고 아팠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느 날 배가 가라앉았다. 기울어진 배가 파도에 일렁이며 바다와 사투를 벌일 때, 많은 사람들이 마음으로 함께 싸웠다. ‘사상 최대의 구조작전’이라는 정부와 언론의 발표를 믿으며, 단 한명이라도 살아서 나오길 기도했다. 그러나 끝내 배가 어두운 바닷물 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 모두가 절망했다. 너무나도 황망한 죽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이들을 애도했다. 생업을 제쳐두고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사고현장으로 달려 내려갔다. 힘들어하는 유가족들의 곁을 지키고, 사비를 털어 차디찬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바다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일 뿐이라고 했다. 제발 좀 잊으라고 화를 낸다. 그쯤하면 됐지 뭘 더 해야 하냐고 다그친다. 사람들은 정말 시간이 지나면 모두 해결되는 줄 아는 걸까? 크고 작은 상처를 겪을 때마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많은 위로는 ‘시간이 지나면 나을 것’이라는 말이지만 또 한편으로 분명한 것은 시간만 믿고 넘어간 많은 일들이 다시 우리에게 반복되어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서글프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을 때 괜찮아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만 믿고 외면했던 상처는 더 큰 병이 되어 있었다.
늦었지만 참회한다. 내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속삭였던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반성한다. 내 일이 아닐 줄로 여겼던 것들이 내 일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가만히 놔둔 상처는 시간이 흘러도 낫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상처가 곪는 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상처가 생긴 지금 소독약을 바르고 치료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더 큰 병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병이 나았다고 안도해서도 안 된다. 다시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환자 본인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함께 관심을 가졌을 때 완치의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독이 있는 식물을 먹은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 의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떤 종류의 식물을 얼마나 먹었는지, 언제 먹었는지 그리고 어떤 부분을 먹었는지’를 묻는 것이다. ‘왜 그것을 먹었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치료를 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금, 여기 우리 모두에게 상처가 났다. 너무나 깊게 베인 상처다. 지금 우리는 상처를 낫게 하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골든타임’ 속에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왜 상처가 났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그것은 ‘왜 사고가 났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는가’부터 알아내는 일이다. 많이 아플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허망하게 잃는 것보다 더 아픈 일은 없기 때문이다.
박유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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