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대학 교직원 식당의 한 장면. 주로 50, 60대의 교수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 돈 더 받아내려고 시행령 반대하는 거 아냐? 가슴 아픈 건 알겠지만 이제 그만 좀 하지. 인양하는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나와? 결국 우리의 세금 아닌가? 앞으로도 사고가 날 때마나 국가가 보상해야 하나, 경제를 살려야 하는데. 대통령께서 링거까지 맞으며 국가를 위해 애쓰는데 너무들 하잖아? 등의 대화가 오간다.
그 대화를 들은 옆자리의 40대 교수들은 대충 다음과 같은 유형의 반응을 보인다.
1번 유형.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없다. 그들이 뭔 얘기 하는지도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냥 그날 나온 반찬이 맘에 안 든다. 연구비 수주를 위한 보고서 작업이 급하므로 10분 만에 자리에서 일어선다.
2번 유형. 뭐라 한마디 하고 싶지만 참는다. 한경오(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를 보는 개념 있고 의식 있는 나는 절대로 저들과 상대하지 말아야지 결심한다. 평소 학문적으로 존경하던 교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면 그 교수에게 실망한다. 계속 존경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3번 유형. 조용히 다가가 차분하게 사실 위주로 설명한다. 유가족들, 돈 때문에 반대하는 거 아니에요. 시행령 반대에 대한 오해를 쉽게 설명한 동영상이 있는데 한번 보실래요? 라며 스마트폰을 꺼낸다. 이런 분들은 대개, 인권운동을 오래 한 분들의 말투가 주로 그렇듯 차분하게 사실관계에 집중하고 상대방의 말에 잘 흥분하지 않는다. 이럴 때 50, 60대 교수들의 표정은 대략난감이다. 뿌리치기에는 너무 예쁜 방문판매 여성이라도 마주친 듯 어쩔 줄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설득의 효과는 없다.
4번 유형.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질문한다. 역지사지해보라고. 당신이 그런 식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라면 이 상황에서 그깟 돈 더 받아 내려고 삭발하고 행진하고 단식하시겠어요? 당신들은 아니면서 왜 그들은 그럴 거라고 생각하세요? 이때 그분들의 반응은 공적인 장소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쳐대는 사람이라도 만난 것처럼, 옆에서 뭐라고 떠들던 그냥 무시하고 자신들이 하던 얘길 계속한다.
5번 유형. 이후 학교생활에 먹구름이 낄 것을 각오하고 한바탕 붙는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나라 꼴이 이 모양인 거야. 기득권을 악다구니처럼 물고 놓지 않으려는 당신들 때문에 젊은이들의 미래가 깜깜한데 당신들만 몰라. 그런 생각으로 대학에서 학생들은 어떻게 가르치나?
이 단계에 이르면 드디어 한두 테이블의 대화는 교직원 식당 전체의 토론과 난장으로 불붙는다.
나는 2번 유형의 사람이다. 하지만 침묵하는 동안 늘 갈등한다. 3번, 4번, 5번 중에서 하나 골라 행동하고 싶어서. 하지만 3번, 4번은 내공의 깊이와 지혜가 모자라 포기한다. 5번은 용기와 능력이 없어서 포기한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아예 교직원 식당에 가지 않는다. 어쩌다 가게 되면 나는 1번 유형이 되어 10분 만에 식사를 마친다.
언제쯤이던가? 교직원 식당에서 평화롭고 유쾌한 정치 얘기가 사라지고, 목소리 크고 연령대가 높으신 분들의 일방적인 얘기를 닥치고 듣거나, 극단적인 싸움으로 번지거나, 아무 생각 없이 하루 종일 돌아가는 종합편성채널 수준의 공허한 대화만 무성하기 시작했던 그때가. 그리고 이것이 내가 속해 있는 교직원 식당만의 풍경일까?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고, 건강한 토론문화가 사라졌으며, 지식인 집단에서의 대화조차 연예오락프로그램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됐다.
나는 우리 정치가 가장 잘못한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연령 및 계층 간의 갈등을 고착화시켜 침묵하게 만들어버린 데 있다고 생각한다. 인권과 생명, 안전과 미래의 문제로 바라봐야 할 작금의 문제들조차 몽땅 정치적 프레임에 담아 국민을 분열시켰다. 그게 아니라면 세월호 이제 지겹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는 부모 된 자들의 심리를 이해할 도리가 없다. 어느새 너무나 길어진 불통의 시간에 의한 갈등과 폐해는 이제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그리고 별 이변이 없는 한 내가 그들보다 오래 이 나라에 살아야 한다. 내가 더 오래 이 학교에서 밥을 먹어야 한다. 나는 도대체 몇 번 유형으로 살아야 하나?
김진우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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