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 몇주 동안 여론조사는 영국 선거에 대한 동일한 결과를 말해주고 있었다. 데이비드 캐머런이 이끄는 집권 우파 보수당이 노동당으로 교체되거나, 아니면 자신이 계속 집권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연정을 구성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충격이었다. 날이 밝아오자 영국 전역으로 충격이 확산되었다. 기대와 정반대로 캐머런은 여전히 총리였고, 노동당의 밀리밴드는 다수당의 지도자나 연정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다. 여론조사는 왜 틀렸는가. 물론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1992년 모든 여론조사가 당시 닐 키넉의 노동당이 집권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막판에 유권자들은 타블로이드 신문의 선동에 겁을 먹었고, 이번 선거에서 캐머런이 획득한 것보다 21석이나 더 많은 표를 몰아줘 보수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1992년에 보수당과 노동당을 나누었던 이데올로기적 구분은 지금과 비교해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뚜렷했고 중요했다. 보수당은 더 많은 민영화와 세금 감면을 주장했고 노동당은 마거릿 대처 정부가 망가뜨려놓은 제조업 부문을 재건하기 위해 경제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92년에 유권자들이 노동당을 거부하고 보수당으로 달려간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여론분석가들은 “수줍은 토리 요인”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유권자들은 보수당에 투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치욕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속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 역시 “수줍은 토리 요인”이 결과를 제대로 설명하는가. 얼핏 봐도 훨씬 복잡한 것 같다. 1992년 보수당과 노동당을 구분했던 이데올로기적 차별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1997년에서 2007년까지 영국을 이끌었던 노동당 총리 토니 블레어의 유산은 실질적으로 대처의 유산이었다. 오늘날 보수당과 노동당의 차이는 당근과 순무의 차이에 비길 만한 것이다. 블레어의 계승자 고든 브라운이 2010년 총선에서 패배했을 때, 13년 동안 이루어진 노동당의 통치에 유권자들이 질려서 변화를 원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2010년 이래 캐머런 정부는 체계적인 국가재정 관리에 실패하고 공공지출금을 삭감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부채를 줄이겠다는 약속을 어겼다. 그렇다면 왜 영국 유권자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 정당에 표를 줬는가.
간단하게 답한다면, 영국인들은 보수당에 투표하지 않았다. 수치들이 이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보수당에 투표한 유권자 비율은 36.9%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낡아빠졌고 고색창연한 영국의 선거제도 덕분에 36.9%라는 수치는 하원의 51%로 환산된다. 이 결과는 영국인들 대다수의 의사에 반하는 정부가 다음 5년 동안 어떤 다른 정당에 의존할 필요 없이 정치의제를 독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나이절 패라지가 이끈 영국독립당(UKIP)은 애초 40석을 얻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론조사도 이런 예측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 당은 400만표(전국적으로 13%)를 얻었음에도 오직 하나의 의석만을 확보했을 뿐이다. 1100만표(36.9%)를 얻어서 331석을 따낸 보수당과 비교했을 때 부당한 일이다. 녹색당도 비슷하다. 110만표(3.8%)를 득표했으나 한 석을 얻었을 뿐이다.
영국 정치에 친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이런 상황은 헤아리기 어려운 ‘역설’이다. 스코틀랜드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그런 생각이 더할 것이다. 녹색당이나 영국독립당과 처지가 비슷한 스코틀랜드민족당(SNP)은 영국독립당의 득표율 절반(전국적으로 4.7%에 해당하는 150만표)만을 얻었음에도 56석을 획득했다. 영국독립당과 녹색당을 제쳐두더라도 많은 영국 국민들은 영국의 선거제도가 불공정하고 민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2015년 선거에서 단호하고 명쾌하게 드러난 사실이 있다면, 영국에 더 이상 정치적 대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주 다우닝가 10번지에서 캐머런은 선거 승리를 자축하는 연설을 했는데, 다분히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보수주의로 하나 된 국가”를 연상시키는 “하나 된 국가”로 영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1860년대와 1870년대 각각 총리에 올랐던 디즈레일리는 이 표현을, 심화하는 불평등을 가리고 자신이 영국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확신시키기 위해 사용했다. 이제 캐머런도 똑같은 의도에서 이 문구를 쓰고 있다.
그러나 직접적 여파는 보수주의로 하나 된 국가라는 것이 사실상 일당국가라는 점이다. 노동당은 24석을 잃음으로써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게 되었다. 영국독립당이나 녹색당 같은 “소수” 정당은 의회에서 존재감을 상실했고, 스코틀랜드민족당은 하원에서 제3당의 지위를 누리게 되었지만, 스코틀랜드 독립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이렇게 영국을 “하나 된 국가”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허허로운 농담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제이슨 바커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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