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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공적연금은 왜 필요한 것인가? / 이정우

등록 2015-05-18 18:57

최근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 등 이른바 공적연금의 개혁방안을 두고 날선 정치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런 논란을 잠시 접어두고 공적연금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려 한다. 주위에 노후보장을 위한 연금상품이나 저축상품들이 넘쳐나고 있음에도, 굳이 공적연금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상당수 사람들은 개인의 노후대비까지 국가가 간여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공적연금이 필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로 대개 사람들은 당장의 소비욕구 때문에 미래에 대한 대비를 등한시하여, 상당수는 준비되지 않은 노후를 맞게 될 위험이 높다는 점을 든다. 국가는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제성이 적용되는 공적연금을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는 공적연금의 필요성에 대한 논리적 근거로서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문제는 국가가 굳이 공적연금을 운영하지 않아도, 개인들이 시중에 거래되는 일정 수준 이상의 연금 또는 저축상품을 구입하도록 하는 의무규정만 적용해도 해결이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칠레 등 남미의 다수 국가들에서는 공적연금 없이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국민의 노후보장 문제를 해결해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공적연금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민간보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특별한 역할을 기대해서다. 먼저 재분배 기능으로서 이는 공적연금만이 수행할 수 있다. 다음으로 국민들에게 노후생활의 안정을 보장해 주는 기능이다. 이를 위해서 개인은 이미 근로를 시작하는 시점부터 죽을 때까지 전체 생애기간(개인별로 60~80년)에 걸쳐 자신의 소득을 적절하게 관리 및 배분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인간의 노후보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사건이 일어날지 예측하기 힘들다. 이른바 불확실성의 문제가 존재한다. 이 기간에 물가, 소득, 실업률, 기대수명 등과 같은 일상적인 지표들의 변화추이를 전망하고, 이에 근거하여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기 어렵다는 얘기다. 더더구나, 지난 세기 인간이 경험한 것과 유사한 경제대공황, 대량실업, 화폐개혁, 전쟁 그리고 세계적 차원의 경제위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통일 등은 고도의 불확실성을 가진 위험 요인이다. 이는 민간 차원에서 문제 해결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이처럼 공적연금에 대한 평가는 일상적 상황뿐만 아니라, 국가적 긴급 상황에서도 국민들에게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해줄 수 있는 위기대처능력을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독일의 공적연금은 도입 이후 지금까지 126년 동안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패배와 국토의 총체적 파괴, 역시 두 차례의 화폐개혁, 1920년대의 초강력 인플레이션 그리고 분단과 통일 등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도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여 국민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우리도 공적연금에 대한 기대수준을 최소한 이 정도에는 맞추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고도의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은 공적연금의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것은 비용 문제를 세대 내 그리고 세대 간 분담하고 위험을 분산하는 기능을 기반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공적연금의 존재 근거가 되는 기능은 수익비와 같이 저축의 관점에서 ‘내가 낸 것과 내가 받아가는 것’을 단순 비교함으로써 공적연금의 기능을 개인 중심으로 파악하는 사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때만 활성화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공무원연금이나 국민연금의 수익비가 1을 넘어서기 때문에 모두 재정적으로 부실한 제도로 진단하는 것은 공적연금으로서의 본질을 훼손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공적연금 개혁안 자체를 재점검하고, 새로운 차원에서 공적연금의 개선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이정우 인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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