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난사 사고가 있었다. 지난주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던 터라 남 이야기처럼 들리지만은 않았다. 이런 사건이 나도 대한민국 남자라면 선택의 여지 없이 예비군을 가야 한다. 예비군 훈련에 불참하면 예비군 훈련 불참죄로 처벌받을 것이 뻔한데. 하지만 예비군 훈련의 관리부실·소홀의 정도가 어떤지 다녀온 사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어쨌건 지난주에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아침 9시까지 입소니, 아침밥도 못 먹고 후다닥 집에서 나와 예비군 훈련장에 갔다. 아침 9시부터 인원 파악을 했고, 올해부터 바뀐 훈련 방식에 대해서 교관이 이야기한다. 두 가지가 특이점이었다. 하나는, 병사들이 분대인력을 통솔하던 타율적 방식을 바꿔, 10명 단위로 분대인력을 끊어서 5가지 훈련을 이수하는 ‘자율적 방식’을 도입한다 했다. 사격술, 전술훈련, 시가지전투(서바이벌 형식), 안보강연 1, 2 순이다. 각 훈련과목을 70% 이수하지 못하면, ‘조기퇴소’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름 전략적이다.
모든 예비군 훈련에 있어서 조기퇴소는 무기다. 기본훈련의 경우 8시간인데, 정식으로 오전 9시부터 시작하면 오후 5시에 끝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통상 예비군 훈련은 오후 3시에 끝난다. 아니, 사실 오전에 훈련을 다 이수하면 오후에는 막상 할 것이 없다. 6000원짜리 점심 먹고 한두 시간 분대원들과 수다 떨다가 집에 가면 된다. 머리를 잘 써서 오전·오후 두 번으로 예정된 안보강연을 오전에 이수해 놓으면 2시반 전에도 훈련을 끝낼 수 있다.
전술훈련으로 예정된 심폐소생술, 분대전술, 포박술은 대충 형식적으로 30분 만에 다 이수를 했다. 시가지전투는 그래도 제대로 하겠지 생각했다. 페인트 총탄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서바이벌 총이 고장났단다. 대충 A-B조를 짜서 양쪽에 꽂힌 깃발을 서로 선점하면 된다고 한다. 이것도 형식적으로 5분 만에 끝이 났다.
안보강연을 3년에 걸쳐 3번을 들었지만, 이번 안보강연은 나름 개편을 했다고 봤다. 탈북자 래퍼의 김정은 비하 랩을 한참 들었는데, 요샌 이런 것으로도 랩을 하는구나 생각했다. 어쨌거나 안보강연도 이수제도 도입에 따라서, 안보강연 또는 동영상에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시험을 쳐야 한다고 했다. 시험에 낙제하면 조기퇴소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열의가 없던 청춘들이 갑자기 미친 듯이 강연을 듣는다. 예비군의 무기는 조기퇴소인 셈이다.
대한민국 예비군이 1968년에 도입된 이래 대통령 후보들마다 예비군 축소를 공약으로 걸었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과연 예비군을 축소할 수 있을까. 무수히 많은 청춘들을 잉여로 만드는 예비군 제도에 대해서 제대로 된 개혁안을 마련할 수는 없을까.
단지 훈련보상비 1일 밥값 6000원, 교통비 5000원이 예비군 훈련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다.
박지웅 변호사·예비군 3년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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