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교육감이 허위사실 공표죄로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인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국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의혹 제기가 과연 유죄인가’ 하는 정도의 물음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문제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아야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더 깊어질 수 있다.
명예훼손죄, 후보자 비방죄, 허위사실 공표죄 등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기제이다. 표현의 자유에 관한 한 한국은 아직까지 후진적인 나라다. 조 교육감의 영주권 의혹 해명 요구나, 문용린 교육감의 ‘보수단일후보’ 주장, 고승덕 후보가 조희연 후보에게 제기한 통합진보당 연루 의혹 해명 요구는 모두, 마땅히 보장해야 할 공인 검증의 자유, 표현의 자유, 선거활동의 자유에 속하는 사항이다.
선진국에서는 공직자나 공직 후보자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와 명예훼손이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다. 악의적으로 허위를 공표해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경우에 한해 민사책임을 물을 뿐이다. 선진국들이 이렇게 명예훼손을 비형사범죄화하고, 유엔과 유럽안보협력기구 등 국제기구들이 명예훼손 비형사범죄화 운동을 하는 것은, 명예훼손죄가 강자 보호를 위한 비판 봉쇄 도구로 악용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선거 시기의 발언에 대해서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더 큰 보호를 받는다.
한국은 이런 국제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정치 검찰의 책임이 크지만, 검찰의 입증 책임을 피고인에게 전가해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한 형사 처벌을 너무 쉽게 허용한 법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한국이 ‘프리덤 하우스’나 ‘국경 없는 기자들’ 등 국제기구의 평가에서 ‘언론 자유 국가’ 지위를 상실하고 ‘언론 부분 자유 국가’로 강등된 데에는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공표죄의 남용이 큰 몫을 했다.
모든 후보자가 공인이라는 점에서 볼 때, 상대의 낙선을 위해 비판하고 검증을 위해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자유선거에서 당연한 권리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후보자 비방죄가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물론 없는 사실을 조작하거나 허위임을 알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행위는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선진국처럼 민사와 선거 무효소송으로 대신할 수도 있고, 제한적으로 형사 처벌을 남기는 방안도 있다. 미국은 일부 주에 허위사실 공표죄와 명예훼손죄가 남아 있지만 사문화되었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선 허위사실 공표죄를 아예 없앴다. 반면 싱가포르, 타이 등 아시아의 권위주의 국가들은 명예훼손죄와 허위사실 공표죄의 형사 처벌을 애용한다. 한국은 이들과 닮았다.
프랑크 라뤼 유엔 의견과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2011년 한국 보고서에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공표죄의 남용과 정치적 악용을 비판하면서 비형사범죄화를 권고한 바 있다. 같은 해 유엔 인권위원회는 모든 당사국들이 명예훼손의 비형사화를 고려해야 한다고 권유하며, 어떤 경우에라도 형사법의 적용은 가장 심각한 경우로만 한정해야 하며 특히 자유형은 절대로 이용되어서는 아니된다고 하였다. 최근 유엔 인권위원회는 한국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 이행 상황에 대한 ‘쟁점 목록’에서, 명예훼손에 대한 광범위한 정의를 고치고 명예훼손을 비형사범죄화할 계획이 있는지 밝힐 것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7월까지 답변서를 제출해야 하며, 유엔 인권위원회는 10~11월에 한국의 이행상황을 심의한다. 한국이 인권 후진국, 언론 탄압국, 정치적 표현의 자유 억압 국가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서는, 유엔 권고와 같이 정치적 남용의 대상이 되는 명예훼손죄와 허위사실 공표죄를 비형사범죄화하고, 공적 인물의 비판에 대해선 민사 책임도 너무 쉽게 묻지 못하도록 법제를 시급히 개혁해야 한다.
유종성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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