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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정보제공 동의서와 노동자 인권 / 박근배

등록 2015-05-25 18:55

우리는 정보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정보 보유의 비대칭으로 인해 권력관계가 발생합니다. 즉, 상대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보유할수록 관계에 있어서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됩니다. 국가가 빅데이터를 통해 국민에 대한 권력을 강화할 수 있듯이, 회사는 종업원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이용함으로써 직원들에 대한 통제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회사가 직접적으로 직원 개인의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직원들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더라도 비대칭적인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직원과의 권력관계는 강화됩니다. 그리고 회사는 고용관계로 인해 이미 발생한 권력을 이용하여 직원의 개인정보를 수집함으로써 정보보유의 비대칭으로 인한 권력을 강화합니다. 정보제공에 불응할 경우 근로계약을 체결, 유지할 수 없다는 불이익의 고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회사의 정보 역시 공개되어 있고 더욱이 직원은 공개되지 않은 정보에도 접근할 수 있으니 회사와 직원의 정보관계가 대칭적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원 개인이 보유한 회사의 정보는 회사의 선택에 의해 공개된 정보이거나 전체의 모습을 알 수 없는 파편적인 형태입니다. 최고 경영진이 아닌 이상 직원들이 가진 부분적인 정보는 모호하고 무의미하기까지 합니다. 개별 직원들이 가진 정보들을 확인하기 위해 서로의 정보들을 종합하거나 공공의 영역에서 확인하기 위한 공론화의 시도는 거의 모든 회사가 설정하고 있는 ‘내부정보 보호’라는 제도에 의해 금지됩니다. 회사의 정보는 회사의 이익과 평판 그리고 직원과 고객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외부 유출은 물론 조직 내부 직원들 간의 공유도 불법으로 규정되기 때문입니다.

요즘 주목받고 있는 외환은행의 임직원에 대한 과도한 정보제공 요구 문제는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되어야 합니다. 직원들이 반대하는 합병의 일방적 진행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문제제기를 통해 부각된 것이긴 하지만 이 문제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회사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위험에 대한 문제제기입니다. 개인정보 보호법이라는 기본적이고 허술한 보호막조차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미 오래전부터 제공받고 있으며 다른 은행과도 대동소이하니 문제 될 것 없다는 은행 측 전문변호사의 짜증 섞인 답변이 정보주체의 권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정보인권 현실을 보여 줍니다.

외환은행의 임직원용 개인정보 제공동의서는 개인정보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2011년 다른 은행들과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일방적인 통합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책을 잡히지 않으려고 개정하였다가 노동조합으로부터 불법적이고 비인권적인 내용을 지적받았습니다. 이를 경영진이 억지스러운 꼬투리잡기로 치부해 버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비슷한 내용의 동의서를 받고 있는 다른 은행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정보는 개인이 삶을 영위하며 발생한 그리고 삶 자체에 대한 정보입니다. 이를 누구에게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는 당연히 정보의 주체인 개인에 의해 결정되어야 합니다. 이번 외환은행의 임직원용 정보제공 동의서 문제로 인해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직원이 보유한 개인정보의 주체성이 바로 서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박근배 서울시 광진구 구의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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