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시디(LCD) 제조업체 하이디스의 노동자가 자살했다. 문제의 발단은 정리해고였다. 하이디스를 인수한 대만 기업 이잉크(E-ink)는 특허 장사로 이익만 챙긴 채 지난 1월 일방적으로 공장을 폐쇄했다. 그리고 3월1일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자살한 노동자는 노동조합의 전 간부로서 정리해고에 맞서 싸웠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업무방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사측의 엄포였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 그는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을 남긴 채 자살을 택했다. 하이디스 노동자뿐만 아니다. 정리해고에 저항하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현실이다.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에 맞서 파업을 했던 노동자들은 업무집행 방해 등을 이유로 징역형을 살았다. 대법원은 징역형을 확정하면서 이렇게 판결했다.
“기업의 구조조정의 실시 여부는 경영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이는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비록 그 실시로 인하여 근로자들의 지위나 근로조건의 변경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고 하더라도 그 쟁의행위는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경영권과 노동 3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기업이 쇠퇴하고 투자가 줄어들면 근로의 기회가 감소되고 실업이 증가하게 되는 반면, 기업이 잘되고 새로운 투자가 일어나면 근로자의 지위도 향상되고 새로운 고용도 창출되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런 입장에서 정리해고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지난 4월15일 고용노동부는 경영권을 제한하는 단체협약에 대해서는 시정 지도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5월 한달간 단체협약을 일제 조사하고 문제가 있는 단체협약에 대해서는 시정 지도를 하겠다는 것이다. 경영권을 제한하는 단체협약, 예컨대 정리해고를 할 때 노동조합의 동의를 얻도록 정하고 있는 단체협약은 불합리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대법원과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경영권은 일할 권리, 노동 3권에 우선한다. 나와 내 가족의 생계가 달린, 모든 노동조건의 기본이 되는 해고 문제에 대해 노동자는 사용자에게 따지거나 항의할 수 없다. 경영권이라는 개념은 1987년 이전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경영권이 헌법이 보장하는 일할 권리, 노동 3권에 우선하는 것인가. 경영권을 주장하는 이들은 경영권이 기업의 재산권에 기반한다 주장하지만, 재산권은 그 내용이 법률로 정해진 때에만 인정되며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행사되어야 하는 제한적인 권리 아니던가. 회사가 잘되면 경영자의 공을 치켜세우면서 왜 회사가 어려울 때 그 책임과 위험은 노동자의 몫인가. 경영자는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을 하고, 노동자들의 문제제기는 발목잡기에 불과하다는 그 믿음은 근거가 있는 것인가. 심지어 하이디스나 쌍용자동차와 같은 먹튀 기업이 넘쳐나는데 어떻게 기업이 잘돼야 노동자도 잘된다고 단정할 수 있단 말인가. 기업이 잘돼야 노동자도 잘되고 나라도 잘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가 살고 잘돼야 기업도 살고 잘될 수 있는 것이다.
윤지영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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