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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천안문 사건 26주년에 팡리즈를 떠올린다 / 권중달

등록 2015-06-03 19:10

6월4일은 중국의 민주화 운동이 절정에 달하였던 천안문 사건이 일어난 지 꼭 26년이 되는 날이다. 1989년 5월말부터 계속된 베이징 학생 시위는 급기야 중국 당국이 군대를 동원하여 6월4일에 이를 진압해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그때 중국 당국은 학생 시위를 배후조종하여 중국을 배반한 사람으로 팡리즈를 지목하였다. 중국이 낳은 세계적 천체물리학자인 팡리즈는 앞서 학생들에게 민주화 강연을 한 것을 이유로 공산당은 물론 대학에서도 쫓겨나 베이징 천문대로 가야 했다. 그는 사건 당시 중국 당국의 검거를 피해서 주베이징 미국대사관으로 들어가 13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끝까지 ‘중국 헌법’에 보장된 자유를 주장하면서 버티다가 1990년 6월25일에 베이징에서 미국 군용기에 몸을 싣고 중국을 떠남으로써 중국은 애국자이자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를 잃었다.

팡리즈는 중국에 ‘주의’(主義)가 지배하는 한, 학문조차 주의에 지배받게 되어 중국의 현대화란 불가능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연설하고 다녔다. 그의 연설은 중국 당국의 말대로 선동이 목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학자로서 자유로운 연구를 하기 위해 민주와 자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에 외친 것이다.

아편전쟁 이후 서세동점의 환경 속에서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중체서용(中體西用)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1919년 5·4 신문화운동이 전개되면서 베이징대학의 천두슈(陳獨秀)는 전면적 서양화를 의미하는 데모크라시, 즉 덕(德) 선생과 사이언스를 의미하는 새(賽) 선생을 중국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후로 꼭 70년 만에 ‘민주’와 ‘과학’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팡리즈가 나타났고, 다시 베이징에서 학생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진압되었고, 다시 언제 민주화와 자유화의 열망이 현실화될지 가늠할 수 없다.

중국 당국이 천안문 사건의 배후조종자로 지목한 팡리즈도 벌써 몇년 전에 타계했다. 중국도 많은 변화를 거쳐서 지금은 G2로서의 지위를 누리며, 겉으로는 미국과 양강 구도를 이루며 세계를 이끌고 있다. 야심찬 새 실크로드 계획을 통해 모든 길을 중국으로 연결시키려 하고 있다. 중국이 굴기하였음을 보여주는 징표인지 모른다.

그러면 민주주의와 자유를 도입하지 않아도 중국은 발전하고, 세계의 리더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까? 팡리즈의 주장은 실정을 모르는 지식인의 주장이었을까? 우리는 중국의 두 얼굴을 지금 경험하고 있다. 이른바 유커(중국 관광객)들이 명동 한복판에서 명품을 싹쓸이하며 돈을 물 쓰듯 하는 모습과, 불법입국을 해서라도 한국에 들어와서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중국 사람들을 보는 것이다. 중국이 불평등과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가 되어 가고 있음을 본다.

이 양극화한 모습을 서울에서 보면서, G2로 자리매김한 중국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중국이 정말로 정치를 잘하는 것일까? 그래도 중국의 국제적인 지위가 향상된 것은 마오쩌둥, 덩샤오핑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훌륭한 지도자 덕분인가? 사실 역사를 올라가 보면, 한무제, 수양제, 당태종 시절은 성군이 지배한 멋진 시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시대 우리는 침략을 받았고, 이를 잘 극복한 역사를 갖고 있다. 침략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고생을 안 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왕조도 그렇게 급격히 기울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은 침략자나 침략을 당한 자나 막대한 손해를 당하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을 터인데 왜 침략을 했을까? 성군론 뒤에 숨은 비판의 금기시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아는 사람들조차 성군(?)의 결정에 대해 그 후과(後果)를 알면서도 비판을 못했던 것이다.

중국은 공산혁명을 하였지만 천안문 사건 이후에도 아직 성군론이 지배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마오쩌둥, 덩샤오핑에서 현재 시진핑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보면 ‘지도자 동지’란 성군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현대사에서도 성군론이 지배하던 나라가 있었다. 2차대전을 일으켰던 일본과 독일과 이탈리아였다. 그 결과는 지도자 자신뿐 아니라 그가 속한 나라와 국민에게도 엄청난 비극을 안겨주었다. 지식인은 당연히 경고해야 했다. 그래서 천안문 사건 때 팡리즈는 위로부터 주는 민주화는 민주화가 아니라고 외쳤다. 그의 망명으로 이 주장은 실현되지 못한 채 화두로 남아 있다.

성군론이 지배하고 민주화가 화두인 이웃나라에 대해선 경계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지금의 중국에 아직도 성군론이 대세를 이룬다면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성군론이 갖는 비판불가가 역사에서는 항상 오판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천안문 사건이 일어났고 팡리즈가 망명한 6월에 다시 한번 중국의 민주화 정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권중달 중앙대 역사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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