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법 취지 무시하는 교육부의 시행령안 / 오길영

등록 2015-06-11 18:29수정 2015-06-11 18:29

지난 3월 ‘국립대 회계재정법’이 발효되었다. 국고회계와 기성회계로 이원화된 회계를 ‘대학회계’로 통합하여 총장이 자율적으로 편성 운영하고 재정위원회가 심의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대학의 자율적 재정운영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키는 시행령을 추진 중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법으로 보장된 교육연구비의 지급에 관한 것이다. 수십년간 국가가 국립대의 재정을 온전히 책임지지 않았기에, 국립대는 기성회계를 통해 학교 운영비와 교육연구지원비를 충당해왔다. 대학은 한 사회의 인적 역량을 기르는 곳이기에 교수의 교육 연구를 뒷받침하는 재정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교육부의 시행령안에 따르면 교육연구비와 관련해 “통상의 업무 수행은 실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국립대를 퇴보시키고, 상위법의 입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교육부의 시행령(안)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철회되어야 한다.

첫째, 국립대 회계법은 국립대 회계와 재정에 대해서는 다른 법보다 앞서는 특별법적 지위를 갖는다.(“제3조(다른 법률과의 관계) 이 법은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 등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적용한다.”) 법으로 규정된 교육연구경비 지급을 시행령이나 행정지시(가이드라인)로 제한하는 것은 상위법을 위배하는 위법적 행정이다. 입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세월호특별법의 시행령 제정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와 비슷한 시행령 행정을 교육부가 강행하고 있다.

둘째, 회계법에서는 명확하게 교육, 연구, 학생지도 등에 관한 경비를 지급할 수 있다고 밝힌다. “제28조(교육·연구비 등의 지급) 국립대학의 장은 소속 교직원에 대하여 대학회계의 재원으로 교육·연구 및 학생지도 등을 위한 비용을 지급할 수 있다.” 그런데 교육부는 시행령과 행정지시를 통해 “통상적이거나 본연의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는 교육연구비를 지급할 수 없다고 국립대를 압박한다. 하지만 통상적인 업무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부에 묻는다. “통상의 업무 수행”이 아닌 교육, 연구, 학생지도는 무엇인가? 이런 시행령은 법으로 규정된 교육연구비의 지급을 실질적으로 무력화하는 것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지급돼온 기성회 수당과 대학회계의 교육연구경비는 사립대에 비해 열악한 국립대 교수들의 처우를 보조하는 실질적인 임금의 성격을 지녔다. 그런데 법으로 지급이 규정된 교육연구지원비에 납득할 수 없는 단서를 달면서 지급을 제한하려는 것은 심각한 법치주의 위배다.

셋째, 교육부는 지역 국립대학의 육성을 통한 국가 균형발전을 말한다. 대학 발전의 핵심은 우수한 교육 연구 역량을 갖춘 교수에게 달려 있다. 대학은 건물과 시설이 아니라 인적 자원의 우수성으로 평가된다. 우수한 교수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보수와 연구비를 지원해야 한다. 현재 국립대 교수의 급여는 중견 사립대의 3분의 2 정도에 그친다. 여기에 교육연구비 지급조차 제한된다면, 급여는 사립대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렇게 국립대 교수의 급여를 실질적으로 삭감하는 일이 시행령 행정의 이름으로 벌어진다면, 어떤 우수한 교수 후보자들이 국립대에 오겠는가? 교육부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

오길영 충남대 영문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