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박애와 형제애는 다르다 / 이도경

등록 2015-06-11 18:32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차광호씨가 굴뚝에 올라간 지 1년이 넘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동안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들이 세상을 등졌고, 다른 동료들은 살아가야 할 길을 잃었다. 그리고 회사는 수익을 챙기고 입 닦기에 바쁘다. 이렇게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살아가지만 부당해고를 당한 한 노동자의 고통과 울분을 알아주는 이는 없다. 시민연대가 나서서 콘서트를 벌이며 사회적 관심과 참여를 높이려고 애쓰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저 콘서트 구경하러 오고, 밥 한끼 사주면서 ‘힘내시오’ 한마디가 전부다. 그래도 아예 모르는 듯, 우리 주변에 저런 일이 있나 싶을 정도로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이들보다는 낫다. 하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왜냐하면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잠언에 이런 말씀이 있다. “형제란 어려울 때 도우려고 태어난 사람이다.” 근대 시민사회의 출발점이라고 평가되는 프랑스 혁명(1789)의 주역들은 “공화국을 위해 흩어지지 말고 단결하라. 자유와 평등, 형제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쳤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형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현경은 인간과 사람을 구별하면서 인간이 사람으로 살기 위해서는 그 이름을 불러주는 다른 사람이 필요하고 또한 그 사람이 상대방을 마주하며 부대낄 수 있는 장소와 그리고 적절한 반응, 환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의 사람됨이 형성되며, 그것은 동일 본성의 사람으로서 오는 사랑, 바로 형제애(Fraternity)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고유한 인격체로서 그를 환대할 수 있다. 또 그러한 환대가 형성되는 장에서 인정된 자아, 즉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차씨의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보자. 먼저 우리는 근대 시민사회 정신을 “자유, 평등, 박애”로 오해하고 있지 않은가. 박애와 형제애는 분명히 다르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하는 것이 박애라면, 형제애는 ‘형이나 아우에 대한 사랑’으로서 다른 사람을 마치 나의 형이나 아우인 것처럼, 한 가족으로서 연대와 책임의식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박애정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누구나 평등하게 사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본성상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등한 사랑으로 우리는 과연 평등한 본성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는가. 차씨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왜냐하면 홀로 굴뚝에 서 있기 때문이다. 형제애에서 비롯되는 연대가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시의원 아라시 데람바르시의 이야기를 보자. 그는 팔다 남은 식료품의 폐기 대신 그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기부하도록 한 법이 통과되는 데 앞장섰다. 데람바르시는 가난했던 법학도 시절을 기억하며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 처지를 깊게 살펴보았고, 이러한 그의 마음은 그의 친구들과 함께 슈퍼마켓의 남은 식료품을 배고픈 이들에게 전달하는 캠페인으로 이어졌다. 이 캠페인은 법제화되어 가난과 고통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우리의 삶을 점점 더 치밀하게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고유한 주체로서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연대해야 한다. 사람이 자본을 위한 수단이 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형제애로 연대하여 각자가 가진 것을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다. 형제를 위한 나눔과 섬김의 봉사가 자본의 절대화를 저지할 수 있다.

주변을 둘러보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이제 그들을 평등한 사랑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동등한 품위를 지닌 같은 사람으로서 나와 함께 이 시간과 공간에 머물고 있는 형제로 바라보자.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실천적 방안을 고민해보자. 지금 당장 그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가진 고민을 함께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분명 그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연대가 형성될 것이다.

이도경 대학원생·대구시 동구 신암1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