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와 스탠퍼드 대학에 동시 합격했고, 마크 저커버그에게도 영입 제안을 받은 수학 천재 소녀의 일화가 화제였다가, 지금은 이 모든 게 조작이었다는 보도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한 유학생이 주목받고 싶은 욕심에 이메일과 합격증까지 위조해 모두를 속였다는 것이다. 씁쓸하고 착잡한 사건이다.
지금 밝혀진 게 사실이라면, 가장 비난받아야 할 것은 이 학생이 아니다. 이 학생은 언론보도를 보건대 영재는 아니어도 수재 정도는 되는 모양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조금 머리가 좋다는 이유로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너는 아이비리그에 진출해야 해’라는 압력 속에 자라났을 한 꼬마 아이는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차지하기 위해선 남들을 속여야 한다는 생존방식을 터득한 게 아닐까.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이 학생에게 필요한 건 비난이 아니라 심리치료이고, 타인이 그의 삶에 대한 관심을 끄는 일이다.
비난받아야 할 것은 언론, 그리고 당신과 나, 우리 자신이다. 사회철학을 전공하는 필자는 개인주의를 문화적으로나 이념적으로 모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어쩌면 한국처럼 집단문화가 병적으로 퍼져 있는 사회에서는, 역설적으로 개인주의야말로 우리가 배워야 할 덕목인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삶에 관심을 두지 말라.’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핵심 가치다. 그것은 나의 인생이 아니다. 왜 우리는 그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그 학생이 미국 일류대에 진출했으며 저커버그에게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이 사실을 언론들이 대서특필하는 것일까?
싸이는 당신의 친척이 아니며, 김연아도 당신의 딸도 여동생도 누나도 아니다. 타인의 삶이다. 그러니까 외국인을 만나면 ‘두 유 노 싸이? 두 유 노 유나 킴?’ 하고 묻지 말라. 또 다른 제2의 싸이와 김연아가 이번에는 수학계에서 나올 거라고 기대하지도 말라. 나오든 말든 당신의 삶은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는다. 애국주의와 결합된 이 기괴한 집단문화와 단절하지 않는 한, 한국에서 사생활이라는 것도, 개인의 자유라는 것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메르스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에게 ‘너만 살려고?’ 하며 마스크 벗기를 강요하는 등의 극단적 꼰대이즘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극단적으로 위계화된 현재의 학력사회에서 하버드와 스탠퍼드에 동시합격한 사람의 이야기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앞다투어 보도한 언론은 자극적으로 이 학벌과 학력의 위계질서가 유지되는 데 기여한 셈이다. 그러나 왜 우리는 누군가가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사실을 이토록 많은 언론매체를 통해 접해야 하는가?
‘타인의 삶’에 불필요한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라면, 우리는 사다리의 꼭대기에 올라간 사람을 부러워할 이유도, 존경심에 우러러볼 이유도 없으며, 올라가지 못한 자신을 비관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모든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문제는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는 이 비정상적인 경쟁사회와, 그것을 부추기고 또 거꾸로 그로부터 재생산되는 구조적 불평등이다. 이 불평등을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우리가 애국심에 허우적거리며 집단 동일시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 구조적 불평등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며, 결국 이 줄 세우는 사회, 학력에 집착하는 사회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갖지 말라. 당신 자신의 삶이 더 소중하다.
한상원 독일 유학생(철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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