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법원 관련 법안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사가 예상되면서 여러 대안이 제출되고 있다. 그중 ‘대법관 증원’에 대해 평소에 가졌던 의문점을 써보고자 한다.
증원론자는 올해 1월 대한변협 설문조사 결과 51%가 대법관 증원을, 34%가 상고법원 도입을 찬성했음을 근거로 든다. 하지만 같은 설문조사에서 현재 국회에 제출된 법안과 같이 ‘심리불속행 폐지를 전제로 한 상고법원 도입’을 59%가 찬성했던 점에 대해선 침묵한다. 지난해 9월 서울변호사회 설문조사 결과도 동일한 형태의 상고법원 도입에 대해 57%가 찬성했다는 점에서 과연 변호사 다수가 대법관 증원을 원하는지 의문이다.
대법관 1명을 임명하기 위해 천거·추천·검증 절차, 인사청문회 및 국회 동의까지는 최소한 2~3개월이 걸린다. 1년 내내 준비하더라도 대법관 4~6명을 임명할 수 있을 뿐인데, 대법관 20~30명을 추가로 임명하면 3~4년은 걸릴 것이다. 그동안 국회와 대법원은 상시적인 인사청문회 준비로 업무가 거의 마비되고, 대법관의 상시 결원 사태로 전원합의체는 언제 열릴지도 불투명해진다. 더욱이 헌법상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행정부 공직자는 국무총리와 감사원장뿐인데, 대법관이 수십명이나 되는 상황을 헌법이 예정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
수십명의 대법관들로 전원합의체가 가능할까? 토론과 설득을 통해 충분한 논의를 거쳐야 하는 전원합의체는 단순한 다수결 원리와는 다르다. 대법원 판결이 미치는 사회적 파장과 영향력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렇다. 최고법원의 구성원을 소수로 두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수십명의 대법관이 논의할 경우, 그것은 ‘사법부’가 아니라 ‘사법의회’가 될 가능성이 크므로 역설적으로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불리해진다.
특히 대법관 중 일부만으로 전원합의체를 운영하자는 주장은 ‘전원합의체’라는 말과 어울리지도 않고, 대법관의 권한에 차이를 둘 헌법상 근거가 없다는 점이 치명적인 약점이다. 독일의 ‘대법원’이라고 주장하는 ‘연방일반법원’의 판사는 직급과 권한이 다양한 부장판사, 판사 등으로 구성된다. 이곳이 우리나라의 ‘대법원’에 해당한다면, 독일의 대법원은 연방행정법원, 연방재정법원, 연방사회법원, 연방노동법원까지 5개나 되는 셈이다. 독일에서 연방일반법원 판사를 ‘Justice’(대법관)가 아닌 ‘Judge’(법관)로 칭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대법관을 소수만 늘려서 현재 상고심의 문제를 개선할 수만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대법관 6명을 늘려도 대법관 1인당 연간 사건 부담은 2000건이나 되어 충실한 상고심 재판을 하기에는 여전히 과도한 수준이다. 대법관을 소수만 늘리자는 주장은 한마디로 ‘언 발에 오줌 누기’에 지나지 않는다.
상고심 개선 방향에 대해 의견은 다를 수 있다. 필자도 상고법원 도입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대법관 증원은 법률전문가나 일반 국민의 의사에 부합하지도 않으며, 여러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도 아니다. 그렇다면 대법원을 이대로 둘 것인가? 아니라면, 지금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발전적인 ‘비판’을 할 때이지 다분히 감정 섞인 ‘비난’을 할 때는 아니다. 6월 국회에서 한걸음 진전된 상고심 논의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송대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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