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자주 듣는 단어는 ‘메르스’다. 시장에서 스카프 장사를 하시던 할머니가 갑자기 마스크를 파는 것이나 신문에서 메르스 기사가 빠지지 않는 걸 보면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니리라. 심지어는 외국 학생들도 한국에서 메르스가 유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취소하는 바람에 내가 등록한 계절학기 수업도 모두 폐강되었다.
문제가 발생하면 원인을 찾게 마련이다. 메르스 사태 역시 그 원인을 놓고 책임 공방이 벌어졌다. 미흡했던 초기 대응부터 불투명한 정보 공개, 유언비어의 확산, 더 나아가서는 공공병원 부족까지. 격리자가 5천명을 넘어서고 4차 감염자도 발생한 가운데 국민들이 메르스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언론정보학을 전공하는 나는 요새 메르스 사태에 관한 기사를 언론사별로 비교·분석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신문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언론사들이 보도한 메르스 사태의 원인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이다. 여러 원인을 봤지만 간혹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은 ‘메르스와 시민의식’에 관한 보도였다. 기사를 요약하자면 메르스 사태가 번지는 데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한몫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메르스는 국가적 대응이 필요한 감염병이지만 우리에게는 외환위기를 이겨낸 위기 극복 능력이 있으므로 메르스 역시 국민들이 힘을 모은다면 거뜬히 극복할 수 있단다. 시민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기사였다. 내가 좋아하는 ‘연대’와 ‘공동체의 힘’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갔지만 쉬이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메르스가 범국민적인 문제가 된 데에는 정부의 고장 난 재난위기시스템이 존재한다. 지난해 우리는 가슴 아픈 세월호 대참사를 겪었다. 나는 참사 이후 1년 동안 학교에서 대안사회 수업을 들으면서 또다시 나라에 위기가 닥쳤을 때 국가가 국민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나라를 꿈꾸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득한 꿈일 뿐이었다. 대통령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는커녕 “메르스는 충분히 극복 가능한 병”이라며 메르스 비상대책반의 지휘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심지어 삼성서울병원 방역 조처를 병원 쪽에 맡겼고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한 역학조사도 부실했다.
메르스 사태를 극복할 수 있는 시민의식은 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에 충실한 다음에 논의되어야 한다. 그래도 우리에게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나라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연대일지도 모르겠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나는 1년 전의 그날처럼 국민이 보호받는 나라를 여전히 꿈꾼다.
김도원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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