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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집 그리고, 허기진 돼지 한마리에 대해 / 이주현

등록 2015-06-17 18:53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고교 1학년이 끝나갈 무렵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종이 한 장을 건네받았다. 문과와 이과, 무엇이 자신에게 적합한지 따져보고 며칠 내로 선택해 오라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 종이 하나가 내 인생을 결정지을 것만 같아 초조했다. ‘문과/이과’ 사이에 그어진 선이 평생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도 보였다. 그렇게 문과를 택한 뒤로 이과계열에 대한 사고가 퇴보했다. 철저히 교실을 나눠놓은 교육과정과 거기에 편승한 수험생이 만든 결과였다. 물리 시간엔 국사책을 폈고 좋아하던 수학보단 관심 없던 영어책을 오래 붙들고 앉아 있었다. 그때는 과학이 내 삶에 필요치 않을 거라 확신했다.

요즘 그 생각에 고개를 갸웃한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사회과학과 기초과학(자연과학)은 학계에서도 서로 교류하는 중이다. 기초과학 이론이 사회과학에 적용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나는 경제에도 자연 논리가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태어나면 죽기 마련이고, 그 죽음은 또 다른 탄생의 거름이 돼야 한다. 그러니까 ‘순환 구조’가 가장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인데, 거기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예가 암이다. 우리 몸의 세포는 죽고 태어나기를 반복하지만, 암은 죽지 않는 세포 덩어리다. 요즘 부동산을 보면 죽지 않는 세포, 암 덩어리를 보는 것만 같다.

‘잉여’가 생겨나고 ‘축적’이 시작된 뒤로 저주가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 땅의 재화가 무한하다면 별문제 없겠지만, 애석하게도 재화는 한정돼 있다. 고로 필요한 만큼만 얻고, 나머지는 내버려두는 게 맞다. 그럼에도 우리는 ‘잉여’분을 ‘축적’하길 원한다. 한때 축적이란 겨울을 무사히 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겨울을 지나 올해, 내년, 내후년까지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내 세대를 넘어 자식에게, 그 너머의 자식에게 대를 이어갈 축적분을 쌓아두고 있는 게 요즘 현실이다.

무엇이 이 끝없는 축적 경쟁으로 우리를 이끌었나 되짚어보면, 허기진 돼지 한 마리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이미 배가 부른데, 내 앞에서 꿀꿀대는 녀석이 자꾸만 손을 뻗어 열매를 꾸역꾸역 삼켜대니깐. 이랬다간 남는 게 없겠다 싶어 나도 서둘러 삼키고 보는 식이 아닌가. 그렇게 너도나도 허기진 돼지에 홀려 그 비슷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이를 두고 몇몇 사람들은 제 곳간에 쌓인 쌀더미를 옹호하려 허황된 논리를 펼친다. 재화에 한정이란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면 된다. 그런 논리에 잠깐 혹한 적도 있지만, 나는 미국의 모기지 사태와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지던 투자은행의 파생상품들이, 그들 논리의 민낯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집을 더는 집이라 부르지 않는 시점부터, 집이 부동‘산(産)’이 된 이후로, 그러니까 거주지가 움직이지 않는 재산으로 변질된 그때부터 사람들은 축적의 잣대를 여기에까지 들이댔다. 한 채보단 두 채, 두 채보단 세 채. 그들은 자꾸 소유하고 축적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뒤늦게 내 집 마련에 뛰어드는 세대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 시작엔 분명 허기진 돼지 새끼 한 마리가 있었을 테다. 녀석은 지금쯤 또 다른 먹이를 찾아 이미 부동산에서 눈을 뗐는지도 모른다. 가난한 내 부모와 내 부모의 부모들은, 내 자식과 내 자식의 자식, 그 자식의 자식 배까지 불려야 한다며 곳간에 썩지 않는 부동산을 채워 넣는다. 그렇게 온몸에 퍼져나가는 암세포처럼, 죽지 않는 부동산으로 뒤덮인 경제는 이미 시한부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동산이 다시 집이 되지 않는 한, 이 광란의 레이스는 계속될 것이다.

내 자식을 위해 부동산을 쌓는 일이, 내 자식의 집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고로, 집은 말 그대로 집이어야만 한다. 집은 그저 집일 뿐이고 우리는 그곳에 잠시 머물다 가는 객일 뿐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에서 저자는 집 한 채 구하고자 평생 일만 하는 사람들을 한탄하며 숲속 오두막의 삶을 설파한다. 여기서 그의 삶이 행복했는지를 따지고 싶진 않다. 그보단 그가 도심의 삶을 한탄하던 그 시기가 1835년이란 말을 하고 싶다. 그때부터 이미 축적의 저주는 집에까지 뿌리뻗었는지 모르겠다. 부동산은 세대 싸움이 아니다. 이미 죽고 없어진, 혹은 또 다른 먹이에 눈을 돌린, 허기진 돼지가 만든 환영과의 싸움이다. 내가, 그래서 내 새끼가 배부르고자 쌓아 놓은 곳간은 결국 내 새끼가 삼키기도 전에 썩어 문드러지고 만다. 이 땅의 과학이 제아무리 진일보했다 한들 과실을 천년만년 보존할 수단은 없다.

과실이란 본래 썩어 순환되는 본질을 지녔다. 커다란 곳간보다 조그만 텃밭이 보기 좋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마당 한켠에 반듯한 사과나무가 심겨 있는, 그런 집 한 채가 그립다.

이주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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