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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감옥인가 집단사육시설인가 / 이태림

등록 2015-07-01 18:44수정 2015-07-01 22:16

저는 감옥 수감자입니다. 제가 있는 해남교도소는 가장 최근에 지어진 감옥 중 한 곳입니다. 종종 교도관들로부터 이곳이 전국 수많은 교도소와 구치소들 중에서도 ‘호텔’이라고 불릴 만큼 시설 등 환경적인 여건이 좋다는 얘기를 듣곤 합니다. 그만큼 좋은 여건이 갖춰져 있다는 점은 국가 인권의 척도라 할 수 있는 감옥 인권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 시설적인 면에 가려진 더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실은 간과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바로 피구금자의 구금 밀도에 관한 것입니다.

쉽게 제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세 명이 같이 있는 거실(혼거실)에 구금된 상태입니다. 2014년도 법무부 시설 기준에 따르면 혼거실 피구금자 1인의 전유면적 최소기준은 3.4㎡입니다. 독거실은 5.4㎡입니다. 즉 피구금자 한 사람에게 적어도 1평 이상의 면적은 주어질 필요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기준 자체도 매우 열악한 것이지만, 현재 저를 포함한 다수의 피구금자는 이 기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매우 비좁은 공간 속에 구금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구체적인 수치로 살펴보면, 감옥 쪽이 밝힌 현재 제 구금거실의 총면적은 7.72㎡(약 2.3평)이고, 이 중 화장실과 개수대, 사물함 등을 제외하고 수면과 식사 등 실제 행위에 이용할 수 있는 면적은 5㎡(약 1.5평)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면적을 세 명이 나누어 사용하고 있으므로, 한 명당 실 전유면적은 약 1.7㎡(0.5평)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어느 한 사람이 밥을 먹고(식사도 물론 그 안에서 해결합니다) 잠을 자고 생각할 수 있는 일상의 모든 시간(오직 평일 30분 안의 운동 시간만을 제외하고)을 채 0.5평도 되지 않는 비좁은 공간 안에 갇혀서 십 년이든 이십 년이든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바로 옆에서 똑같은 고통을 당하는 낯선 자와 낮이든 밤이든 수시로 살을 맞댄 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오직 차가운 벽과 쇠창살, 그리고 감시의 눈길뿐이라는 것도.

이는 죄와 벌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피구금자 역시 인간이자 국가의 성원이므로 최소한의 기본적 권리는 보장되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현재 피구금자들의 처지는, 상품화를 위해 닭과 돼지 등을 몸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은 비좁고 규격화된 우리 안에 가두고서 집단 사육을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에서 수감자에게 가장 필요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이나 배려심 등은 생겨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기심과 증오, 적대감 같은 부정적인 정서들만 팽배할 가능성이 큽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열악한 생존환경일수록 공격적 성향이 증가합니다. 어떤 이들에겐 그것이 우울증이나 자살충동 또는 집단 파멸의 욕구나 묻지마 범죄 등으로 변주될지도 모릅니다. 이와 같은 심리상태는 구금 당시뿐만이 아니라 출소하여 사회에 복귀하게 되었을 때도 계속될 것입니다. 한번 만들어져 사람에 내재한 이런 부정적인 정서들은 언제 어떤 형태로도 발현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범죄든 아니면 더 큰 재앙이든.

신영복 선생님이 오래전 감옥에서 쓴 편지에서, 한여름 왜 사람들이 서로 보듬고 살아가야 할 ‘우리’가 되지 못하고 단지 증오하고 밀어내야 할 36도의 열덩어리로만 여기게 되었는가를 지적한 이야기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태림 해남교도소 수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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