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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청년세대의 탈정치화’ 극복할 키워드, ‘재미’ / 구본기

등록 2015-07-01 18:47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나는 장기를 조금 둘 줄 안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아버지를 따라 면상(面象) 포진을 쓴다. 우리 동네 어르신 중 ‘장기 좀 둘 줄 안다’고 하시는 분들은 모두 구로구청 앞에 모인다. 공개공지 사방으로 흩어져 장기판을 사이에 두고 대국을 벌인다. 대국자들 주위를 관중이 에워싸 작은 그늘을 만든다. 나도 가끔 그 그늘 중의 하나가 되곤 한다.

친구 병철이는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의 광팬이다. 어떤 피로감도 녀석의 새벽 축구경기 시청을 막지 못한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꼬박 밤을 새우고, 그렇지 못한 날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경기만 챙긴다. 간혹 ‘아주 중요한 경기’가 생기는 날이면, “경건한 자세로 시청을 해야 한다”며 미리 맥주와 고급 안주를 준비한다. 녀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아주 긴 영국 여행이다.

혹자는 물을지 모른다. “그대는 어째서 희끗한 머리들 사이로 온통 검은 머리를 밀어 넣는 이질적인 장면을 연출하면서까지도 동네 장기판을 기웃거리는가?” 병철이의 아내는 이미 병철이에게 비슷하게 물었었다고 한다. “당신은 왜 회사에서 병든 병아리가 되는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먼 나라의 축구경기를 시청하는 거냐?”고. 병철이가 아내에게 했던 답이, 내가 혹자에게 하고픈 답이다. “재미있으니까.”

소스타인 베블런은 (응당 진보적이어야 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보수화(탈정치화)를 ‘탈진’으로 설명한다. 매일의 노동에 모든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에, ‘더 나은 내일을 생각할 만한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대학자의 주장에 감히 반문한다. ‘파김치의 상태로’ 귀가한 한 노동자가 있다고 하자. 침대에 누워 생각한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겠어.’ 그때 마침 오래 짝사랑해오던 여인이 창문 밖에서 그를 부른다. “잠깐 나와봐요. 할 이야기가 있어요.” 그는 과연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을까? 그는 반드시 ‘뛰쳐나간다.’ 현실 속 사람의 에너지는 ‘정액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명약관화한 사실에 의거, “요즘의 청년세대는 스펙 쌓기에 급급해서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만한 잉여에너지가 없다”는 누군가의 (베블런식) 견해는, 탁상공론이다.

다시 장기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내 애인은 장기를 둘 줄 모른다. 고로, 나처럼 장기대국을 구경하는 일이 없다. 다시 말해 나는 장기를 배웠기 때문에 장기를 즐길 수 있고, 애인은 장기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 이런 차이는 다른 대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가 창안한 ‘문화자본’이라는 개념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예컨대 대충 이런 거다. 바이올린 독주회를 즐기기 위해선, 바이올린 연주에 대한 지식 및 감수성을 습득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보통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가정의 아이들에 비해 이런 과정을 거칠 확률이 높다. 이런 까닭으로 인해 문화 취향은 곧 경제계급을 표상하는 구별짓기의 한 축이 된다.

이상의 서술 중, 현 논의에서 중요한 건 ‘학습’이다. ‘탈정치 담론’의 대상이 되는 요즘의 청년세대는, 성장하면서 어른들로부터 정치를 학습한 적이 없다. 부모로부터는 “되도록이면 정치적인 이야기는 피하라”는 조언을 듣고 자랐고, 사회로부터는 ‘정치는 더러운 것(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배웠다. 이른바 유명인들은 티브이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늘 “정치적인 이야기는 걷어내고 논의합시다”라고 한다. 장기를 배우지 못한 내 애인이 장기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정치를 배우지 못한 요즘의 청년들은 정치가 참 재미없다.

정말 청년세대의 탈정치화가 문제인가? 그렇다면 ‘재미’라는 키워드를 꽉 잡아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어떻게 청년들을 장기판(정치판)의 선수, 아니 관중으로 만들 것인가? ‘장기가 치환 가능한 곳(야구, 클럽, 아이돌, 롤, 스타크래프트 등)’에 답이 있다.

구본기 구본기재정안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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