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독자들이 우리의 문자정책에 대한 의견을 신문 지면에 자주 올리고 있다. 새삼스레 한자쓰기라는 것이 대세다. 정책입안자나 그들과 함께하는 일부 학계, 언론계보다 국민이 현명하다. 반세기 동안 써온 한글 전용에 문제가 있었다면 오늘날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자를 익혀 어원까지 알면 좋겠지만, 글은 말을 적는 도구일진대 누가 일상대화에서 어원을 생각하거나 낱말의 생성 과정을 염두에 두는가.
지금 우리나라 출판물의 대부분이 한글 전용이다. 한자를 병용해야 할 듯한 학술서적도 별반 다르지 않다. 후자의 경우 의미가 분명치 않거나, 혼동의 소지가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 국한문 혼용 시절의 낱말이나 용어를 그대로 쓰기 때문에 생기는 한계다. 문자정책이 바뀌면 용어도 우리말식으로 만들어내거나 토박이말을 찾아내야 한다. 어느 고고학 보고서에는 순한글로 검파두식·석부·단각고배·투창고배라 쓰여 있다. 아마 동료들끼리는 통하는 모양이다. 반면에 구석기 분야에서는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뚜르개·찌르개·새기개라 쓰고 있다. 음악시간에 도돌이표·쉼표·더빠르게·갖춘마디·못갖춘마디를 배울 때 우리는 소꿉장난하던 동무와 놀이하듯 수업하지 않았던가. 근래 ‘우리말로 학문하기’의 모임과 책을 보거나 <우리말 철학사전>이 나온 것을 보면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고, 모든 분야에서 본받을 만한 움직임이다.
자기 나라 말로 생각하고, 그것을 그대로 기록할 때 한 나라의 문화와 학문은 비로소 싹이 튼다. 영국의 셰익스피어를 벤치마킹(?)하듯 괴테가 나왔고, 라틴어로만 철학을 하던 풍토에서 토속 게르만말을 씀으로써 독일 철학이 꽃피었다. 어느 시인은 “세종대왕님이 안 계셨더라면 내가 무엇으로, 어떻게 시를 쓰겠느냐?”고 팬들 앞에서 자기 시의 빼어남보다 우리말과 한글의 위대함에 은공을 돌렸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겠다는 논의는 명분도 실리도 없다. 일본 사람들은 자신들이 한자를 변형·간략화 하여 만든 가나가 두 종류나 되며, 여기에 한자까지 더하면 세 가지 문자를 쓴다. 이런 문자정책이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직 식민지시대에 길들여진 증좌다. 그들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으며, 가나문자는 식별력이 한글에 비해 떨어진다. 부득이 대부분을 한자로 쓰고, 토씨 정도만 자기들 문자로 쓴다. 일본은 한 번도 가나 전용을 한 적이 없지만 아직도 한자의 발음을 곁에다 적어주는 것은 그만큼 한자는 뛰어넘을 수 없는 장벽이기 때문이다. 획수가 많아 어려우며, 기계화나 전자화하기에도 애물단지인 한자를 중국인들조차 발음만 같으면 가장 간단한 글자로 대체하거나 기호화하였다. 한자 발생지에서 뜻글자를 포기한 지 오래다. 그들은 동북공정이 한창일 때, 한자 쓰는 나라는 모두 중국의 문화식민지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곤 하였다.
15세기 중엽부터 이 나라 인문환경도 독립하여 발전할 수 있었지만 한글 창제는 ‘없었던 일’로 되돌아갔다. 훈민정음이 있어도 문자생활은 중국에서 빌리고 배워 온 글자를 그대로 쓰니 우리말 어휘는 계속 질식·소멸되어 갔다. 이후 우리는 동·서·남·북의 방향이나 백(百)·천(千) 같은 가장 일상적인 고유어조차 놓치고 말았다. 한 술 더 떠, 전국의 땅 이름까지 중국 지명을 그대로 베끼거나 한자로 억지 작명을 하여 지명만 보면 여기가 중국인지 한국인지 알 도리가 없게 되었다. 일본의 도시 이름은 도쿄(東京)나 교토(京都) 빼고는 모두 일본말 어원이다.
겨울올림픽이 열리게 될 평창군의 발왕산을 선조들은 所亐音山(대동지지)→發音峰(대동여지도)→望浪山(조선지지자료)→發旺山(한국지명총람)으로 적어 왔지만, 모두 ‘바람봉’, ‘바랑산’으로 읽었다. 그런데 맨 나중에 적은 이름이 거꾸로 지명 유래를 만들어냈다. “임금(王)이 날(發) 대지”라는 것이 <한국지명총람>의 설명이다. 근래는 발왕산의 ‘왕’ 글자를 두고 ‘王’이냐 ‘旺’이냐로 소모전을 벌이고 있다. 지리산의 바람고개(八郞峙)나, 월악산의 팔랑계곡, 양구군의 바람골(팔랑리)이 같은 예인데 “여덟 천사(娘子)가 목욕을 했다”거나 “쌍둥이 넷을 낳아 여덟 郎君이 되었다”는 땅 이름 풀이가 향토교육의 현장에서 반복되고 있다. 조선 후기의 어느 ‘실학자’는 이렇게 소리(음)와 뜻(훈)이 달라 불편하고, 오랑캐 소리를 들으니 아예 중국어를 공용어로 쓰자는 주장까지 하였다.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훈민정음을 창제하셨는데 애초 말이 다른 것이 불만이었다. 요즘의 영어공용론과 무엇이 다른가.
1910년대에 우리나라 땅 이름은 동·리 단위까지 한자로 고쳐져 행정지명은 그들 통치의 편의상 100% 한자로 되었다. 광복 뒤 마을의 땅 이름은 조상대대로 불러오던 토박이 지명으로 되돌릴 기회가 왔지만 아직 주민등록증에 적힌 주소는 일제강점기 때 그대로 쓰고 있다. 억지춘향으로 지어진 한자 지명을 두고 자기 집 주소도 쓸 줄 모른다고 한자 교육의 부재를 개탄한다.
일본인들은 한자를 뜻으로도 읽기(훈독) 때문에 아무리 한자를 많이 쓰더라도 자신들의 어휘가 줄어들 걱정은 없다. 중국말은 4성이 있어서 대화 중에도 그 뜻이 구별되지만 우리나라는 장단음 구별도 거의 없어졌다. ‘패자’의 한자는 敗者·覇者가 있어 이긴 쪽인지, 진 쪽인지 알 수 없다. ‘제설’이라 쓰면 눈을 치우는 것(除雪)인지, 눈을 만드는 것(製雪)인지 구별이 안 된다. 우리말의 말 만들기 법칙(造語法)을 연구하고 개발하지 않은 결과는 남의 나라 말과 문자를 빌려 쓰자는 주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삼각김밥’을 설명할 때 석 삼(三), 뿔 각(角)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우리말 ‘세모’를 가르치고, 처음부터 ‘세모김밥’이라 해야 옳았다.
신종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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