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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자유학기에서 자유학교로 / 윤영소

등록 2015-07-20 18:28

삽화 김선웅
삽화 김선웅
오전에 수업이 끝난다. 점심을 가볍게 먹고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도 있고, 용돈을 모아 친구들과 영화관에 갈 수도 있다. 책을 좋아한다면 도서관으로 가고, 집 근처에 작은 시내라도 있다면 천렵을 해도 좋겠다. 혹 진로선택이 고민된다면 관심 분야의 현장체험학습도 가능하다. 학습의 장이 학교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역사회, 시민사회, 문화예술의 현장이 바로 교실이 되는 셈이다. 이름 하여 ‘자유학기제’가 등장하고 있다.

2013년 42개 중학교가 연구학교로 지정되어 선행실시를 하고, 그 반응이 좋아 2014년 38개 연구학교와 773개의 희망학교로 확대되었으며, 올해는 대구·강원·제주를 비롯해 전체 중학교의 70%에 해당하는 2230개 학교가, 내년에는 전국의 모든 중학교가 전면 실시된다.

선행실시 결과 반응도 좋다. 학습동기, 진로탐색, 학교생활 행복감 등의 영역에서 실시 전보다 좋은 결과를 보였다. 학교생활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교육정책이 건국 이후 있었던가를 생각해보면 보통 일이 아니다. 학부모 만족도 역시 높고, 교사들도 긍정적이라 한다. 지난 정부 때 교육부와 일부 시·도교육청과의 갈등이 잦았고, 이번 정부에서도 특목고 재지정 문제로 마찰이 있었지만, 자유학기제는 교육 관련 이해관계자들 모두 기대를 걸고 있다.

교육당국의 설명도 친절하고 자상하다. “자유학기제는 중학교 커리큘럼 중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시험의 부담을 덜어내고 진로탐색과 체험활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유연한 학기를 뜻합니다. 자유학기제에서 ‘자유’(Free)의 의미는 시험 부담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주입식 교육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하고 학생들의 꿈과 끼를 발현할 수 있도록 토론, 실습과 같은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을 뜻해요.”(한국교육개발원 자유학기제온라인정보시스템) 그러니까 유연하고 자유롭고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한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 자유학기제지원특임센터 최상덕 소장도 창의성·공감능력·협력을 미래의 핵심역량으로 제시하고, 이 세가지 덕목을 자유학기제를 통해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며, 무엇보다 이 제도의 가장 큰 특징은 ‘학생이 교육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제도가 순항하기 위해서는 학교 밖 인프라 구축이 절대적이다. 당국의 설명에 따르면, 올 6월9일 기준으로 3만9763개의 체험학습 공간을 확보했다고 한다.

교육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역할기대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그간 이 모든 것을 학교에 부담시켜왔다. 후기 산업사회 이전엔 근대교육기관으로서의 학교는 개인의 신분상승 욕구를 실현해주고, 동시에 국가의 인적 자원을 확보하는 역할을 나름 충실히 했다. 그러나 이제 ‘교육자원’은 학교 밖에 더 풍부하다. 학교가 모든 것을 떠안을 수는 없는 형편이 되었다. 자유학기제의 모델이 된 유럽의 제도 역시 학교 유연화 작업의 하나였고, 배움을 매개로 가정, 학교, 사회가 역동적이고 상호의존적인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개인, 학교, 사회, 국가가 상생하고 있다.

어쨌든 유치원 입학 전부터 선행학습을 시켜야 하는 나라의 현실에서 중학생이 오전 수업만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수업을 토론식으로 진행하며 시험도 치르지 않는다는 것은 혁명적이다.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두발 자유화, 오전 9시 등교 등 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일련의 정책들이 큰 문제없이 정착되고 있다. 자유학기제도 그런 맥락에서 순기능적 요인이 많다. 문제는 중·고등 6년 중 6개월에 국한된다는 점이다. 너무 짧다. 중학교 한 학기만 시행하고, 나머지 기간은 다시 입시 중심의 주입식 교육으로 회귀한다면 과연 자유학기제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학생들에게, 교사들에게, 학교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어야 한다. 자유학기제를 넘어 자유학교로 가는 첫걸음이길 간절히 기대한다.

윤영소 홍천해밀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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