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노동자 자살과 우리의 반성 / 손미아

등록 2015-07-20 18:31

지난 5월10일 한명의 노동자가 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이지(EG)테크 분회장 고 양우권씨다. 그는 유서에서 “죽어서 새들의 먹이가 되어서라도” 노동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썼다.

박근혜 정부 이후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자살은 회사 쪽의 직접적인 노조활동 탄압에 의해서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가장 열심히 노동조합 활동을 해왔던 현장 활동가들 사이에서 더 많이 발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고 양우권씨의 경우에도 사쪽의 극심한 노조활동 탄압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 안타까운 사례다. 2006년 노조 설립 이래 고인은 대기발령, 2차례의 해고, 2차례의 정직 등에 내몰렸다. 그는 법원으로부터 부당해고 판결을 받고 해고 3년 만인 지난해 복직됐지만, 회사 쪽은 그를 현장으로 복귀시키지 않고 사무실 책상 앞에 대기시키며 1년간 시시티브이(CCTV)로 감시해왔다. 회사 쪽은 양씨를 업무에서 배제했으며, 회의에도 참석시키지 않았고, 식사시간에도 왕따를 시켰다. 성과급도 50% 삭감했다. 이는 당사자 스스로 눈치껏 회사를 그만두기를 바라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단란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양씨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의 분회장을 맡으며 리더십을 보였고 동료애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이런 그에게 회사 쪽의 ‘고립정책’은 죽음과도 맞먹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양씨는 지난해 9월 이래 “사람을 피를 말려서 죽이려고 한다. 여기 더 있다가는 사람 어찌 되겠다”고 호소했고, “저 감시카메라 정말 부셔버리고 싶다. 산산조각을 내버리고 싶다. 어떻게 죄인도 아니고 인간에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누가 나를 여기서 제발 좀 꺼내줬으면 좋겠다. (중략)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을 이렇게 사무실에 앉혀놓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정말 죽겠다. 미치겠다는 소리가 하루에도 수십번은 나온다”며 괴로워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양씨는 회사 쪽에 의해 철저히 소외당하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죽음’을 택한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양씨의 자살 밑바탕에는 ‘항거’가 있다. 양씨의 자살은 회사 쪽에 의해 자행되는 소외를 극복하고 자유를 되찾기 위한 항거였다. 양씨의 육체적·정신적 고립은 관계로부터의 소외이며, 인간의 유적 존재로부터의 소외이다.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그 유적 존재를 부정당했을 때, 그 모순을 깨뜨리기 위한 방법으로 자살을 택한 것이다.

양씨의 자살은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로부터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회사 경영진들의 사적 이윤추구에서 비롯된 사회적인 문제다. 양씨의 자살에 항거하는 의사 표시로 동료들인 포스코 사내하청지회 조합원 37명이 한달 넘게 전면파업과 상경 노숙농성을 진행했다. 동료의 자살로 슬퍼하는 노동자들을 위로하기는커녕, 이들 파업 노동자들이 속해 있는 사내하청업체(성광, 덕산)는 이들 노동자를 대부분 해고했다. 노동자들은 재심 인사위를 신청했지만, 하청업체 사장들은 답을 주지 않고 있다. 자본가들은 또다시 노동자들을 죽이려 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살을 보면서 사회적 반성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더 이상 제2의 양우권씨가 나와서는 안 된다. 사회의 문제를 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사회구조의 모순에 대항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살은 사회적인 항거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자살을 우리의 문제로 바라보고 노동자들 자살의 원인을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손미아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교실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