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는 유럽 속의 작은 국가이지만 오래전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길을 걸어온 나라이다. 그 이면에 직접민주주의라고 불리는 제도가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정치적 안정을 누리고 있으며 정치적 안정은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부를 불러왔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환경은 정치인의 정치에 대한 자세와 국민이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달라지게 만들었다.
스위스 국민들은 유럽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정치가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정치를 한다고 믿고 있다. 모든 정치가들의 결정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가 있고 정부는 이 결정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투표는 수시로 있고 우편을 통해 할 수 있는 제도까지 생겼다. 마지막 정치적 결정권이 국민에게 있기에 잘된 것도 잘못된 것도 국민의 책임이 된다. 이런 제도 속에선 마음에 안 들어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고 다수의 결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제도로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사라졌으며 정치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되었다.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것은 국민투표다. 세 가지 분야에서 이루어진다. 동네나 시, 도 그리고 나라 전체와 연관되는 일이다. 정치적인 책임 영역이 이 세 분야로 명확히 분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투표는 다양하다. 한 동네의 동사무소나 학교를 새로 짓는 문제부터 한 도시에서 어떤 모양의 다리를 건축할 것인지 등등 세세한 사안부터 큰 문제까지 대부분의 중요한 일들이 투표를 통해서 결정된다. 투표에 참석을 하려면 많은 것을 알아야 하고 정부, 언론, 여러 민간 단체들이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한다. 물론 많은 토론이 뒤따른다. 자신의 결정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경험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를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배울 수 있다.
국민투표의 결과가 비판을 받을 때도 있다. 2009년 11월29일 이슬람 성전 관련 건축물 반대 투표가 57.5%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이 결정이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견과 맞섰지만 국민들의 결정인 만큼 시행되어야 했다.
직접민주주의가 제도화되면서 스위스에서는 권위주의적인 정치 문화는 사라지게 되었다. 또 정치란 먼 앞날을 보되 타협을 통해 실현성이 있는 문제 해결책을 찾는 방법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인식시켜주었다. 이런 면에서 우리와 많은 차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권위주의적 사상이 아직 정치권뿐만 아니라 전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정치가 문제 해결보다 대인관계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음도 느낄 수 있다. 정치권에 자주 등장하는 기싸움이라든가 친박, 비박, 친노 등등의 단어들이 이를 상징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타협이 기싸움이 되면 해결책을 찾을 길이 없어진다. 민주주의는 인간관계를 뛰어넘는 타협성이 필요한 제도이다.
후남 젤만(박후남) 스위스 일간지 <노이에 취르허 차이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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