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정치권은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던져준 숙제를 푸느라 분주하다. 작년 10월 헌법재판소는 공직선거 선거구 유권자수가 3 대 1로 심각한 차이가 있는 것에 대해 ‘표의 등가성(等價性)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다. 평등선거의 원칙은 1인 1표의 형식적 평등이 아니라 각 유권자가 행사하는 1표의 가치가 실질적으로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판단은 선거구 획정에 관한 것이기는 했지만, 헌재 결정의 핵심은 유권자가 행사하는 1표의 가치가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반영되는 선거제도를 만들라는 것이다.
이 결정에 따라 현재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내년 4월에 치러질 20대 총선의 선거구 획정에 대한 논의는 물론, 헌재 결정의 핵심인 민주주의를 좀더 잘 실현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 정치제도를 어떻게 개선해나갈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유권자의 1표의 가치가 실질적으로 평등하게 반영되는 선거제도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최근 발간된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의 보고서는 ‘정당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의 일치를 통해 투표가치의 평등을 실현하고,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을 활성화시켜 이념과 정책의 다양성을 높이고, 국민들의 정당 선택 폭을 확대한다’며 비례대표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처럼 한 선거구에서 1등 한명만 뽑는 승자독식 소선거구 체제에서는 다른 후보를 찍은 표는 모두 사표가 되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가 왜곡되는 취약점을 보완하는 제도가 바로 비례대표제이다. 올 2월 선거관리위원회도 대의민주주의 선거제도의 근본 취지를 살리려면 비례대표제를 강화하고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 대 1로 조정하며 ‘지역성’을 고려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했다.
비례대표제는 이미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그 의의가 밝혀진 제도이고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다. 한국도 이미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으나 현재 54석뿐으로, 그 수가 너무 작아 제도의 의미가 충분히 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유권자의 의사가 더 잘 대표될 수 있으려면 선관위 제안대로 비례대표를 늘리고 그 비율을 법으로 정하여 최소한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야만 승자독식 구조에서 자신의 욕구를 반영하기 어려운 여성, 장애인, 청년,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도 담을 수 있다. 현재는 이들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과소 대표되어 있기 때문에 비례대표를 통한 소수자 대표성 확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치개혁특위는 초기 선거구획정위원회를 중앙선관위 소속 독립기구로 설치하는 등 당리당략적으로 매번 반복돼온 ‘게리맨더링 관행’과는 선을 긋겠다는 의지를 보여 기대를 모았다. 그런데 최근 오히려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새누리당은 비례대표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들을 내놓으며 비례대표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이는 지난 총선에서 전국적으로 43%의 지지를 얻었지만, 의석은 전체의 51%를 차지하여 최대 혜택을 받았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것으로 부도덕한 발상이다.
사람들은 50만큼의 노력으로 50 이상의 결과를 얻으면 운이 좋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결과가 고정되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특히 약자가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것은 부정의하다고 한다.
부정의를 정의로 만드는 것이 정치다. 현재 정치개혁특위가 해야 할 일은 부정의한 선거제도를 정의롭게 만드는 것이고 국민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는 정치를 만드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대충 시간 때우다가 어쩔 수 없다며 지역구 늘리고 비례대표 줄이는 꼼수를 생각하고 있다면 당장 중단해야 한다. 비례대표를 축소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것이다. 정치개혁의 출발은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이다. 제1당, 2당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민주주의를,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것, 그것이 정치개혁의 출발이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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