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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연구개발 혁신의 기본조건 / 김민수

등록 2015-08-19 18:51

일신우일신. 같은 자리, 같은 모습에 머물지 않고 스스로 갈고닦아 끊임없이 새로워지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변화 자체가 아니다. 변화의 몫을 남에게 떠밀지 않고 나아갈 방향을 놓치지 않으려 지속적으로 자신을 살피는 데에서 힘과 아름다움이 나온다.

정부가 연구개발에 ‘혁신’의 칼날을 다시 들이대고 있다. 5월13일 ‘연구개발 혁신방안’ 발표에 이어, 6월15일 세부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불거졌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역할과 연구개발 거버넌스, 성과 활용, 기획·관리·평가의 이슈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연구 현장과 정책전문가의 의견과 비판에는 귀를 닫고, 올해 말까지 38개 추진과제의 조처를 완료한다는 목표로 9월 정기국회 이전에 입법안 제출을 위한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사실 역대 모든 정부가 연구개발 체질 개선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연구 현장의 모습은 나아진 게 없다. 원인 치료는 뒷전인 채 그때그때 증상 대처와 정부 요구 반영에만 집중해온 탓이다.

이번 방안은 그 자체로도 이율배반적이다. 산학연 역할의 차별화를 말하면서 동시에 대학·출연연에 중소·중견기업 연구소 역할을 요구한다. 8년 전 구분법을 끄집어내 출연연을 다시 기초·원천, 대형·공공, 산업기술로 나눴다. 하지만 에너지 분야가 왜 산업기술에, 재료 분야가 왜 기초·원천에는 해당될 수 없는지, 해묵은 억지 구분법은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국가혁신체제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시야도 부족하다. 산업지원을 위해 설립된 15개 전문 생산기술연구소에 대한 언급도 없이, 기초·원천에서 산업체 직접 지원까지 모든 역할과 책임이 출연연에 전가된다. 각 기관들의 특성과 역할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결과이다. 활용 가능 자원에 대한 검토가 불충실했다면 이는 정책과 전략의 기본을 놓친 것이다.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5년 전 연구개발 거버넌스 논란에서 핵심 문제로 부각된 것이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지배였다. 혁신의 연결고리를 여전히 정부 관점으로만 재구성하려 한다면, 과거의 실패를 넘어선 체제 혁신은 불가능하다.

정부 주도의 관리체제 문제 극복을 위해 20여년 전부터 모색된 것이 전문성을 갖춘 기관에 의한 관리 방식이다. 그래서 한국연구재단과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존재하고, 상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정부는 매번 이들 기관을 재지배하거나 재편 또는 해체함으로써 독점 권력을 유지했다. 민간 영역의 혁신 역량과 전문성에 대한 축적 기회도 육성 의지도 없었다.

정부가 제시한 과학기술전략본부는 참여정부의 과학기술혁신본부보다 취약해 보이지만, 더 큰 문제는 지원이 아닌 통제의 중심핵이 된다는 점이다. 이 어긋난 목적을 떠받치기 위한 기관이 과학기술정책원이다. 16년 전 분화된 정책연구와 기술기획·평가 기능, 또한 과학기술 정보분석 기능까지, 정부 관할과 활용 편의만을 위해 3개 기관의 기능을 통합한다고 한다. 거버넌스에서 정부 독점을 추구하는 방향성은 한참 빗나간 것이고, 역량의 유지 발전에는 관심 없이 조직을 자르고 붙이는 것은 눈앞의 요구를 위해 거위 배를 가르는 격이다.

혁신을 바란다면 체제의 기본생리부터 바꿔야 한다. 그 출발점은 정부 권한의 축소와 참여 거버넌스의 재구성이다. 연구기관 내에서도 혁신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혁신이 엇나가는 것은 관료의 과도한 통제 의욕과 정부 지배 시스템에 공생하는 관료화된 연구자들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권력 핵심층과 맺은 친소 관계가 기관장 선정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는 현실에서는 어떠한 혁신정책도 허상일 뿐이다.

김민수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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