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농축산물 제외의 목소리가 높다. 김영란법으로 인해 명절 특수가 사라진다는 소식은 무분별한 에프티에이(FTA)로 가뜩이나 위축된 농민들에게 불안감을 높여주고 있다. 그런데 평소 농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선개방 후대책’을 외치며 농민들도 새로운 환경에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며 훈계를 일삼던 세력이 갑자기 농민 생존을 염려하기 시작했다. 최근 새누리당 대표 등 지도부는 농축산물 제외에 힘을 싣고 있고, 조선일보·동아일보는 아예 법을 개정해야 한다며 거침없이 나서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오랜만에 야당답게 강하게 나서고 있다.
한국 농민을 이렇게도 깊이 사랑했는지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할 정도이다. 그러나 현재의 이상한 광경은 농민을 앞세워 김영란법을 누더기로 만들 소지가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시행령으로 세월호 특별법을 무력화시키듯 김영란법도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벌써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것이다. 김영란법은 세월호 사건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세월호 사건의 본질 중 하나가 ‘관피아’였으며 한국 사회의 뿌리깊은 부패사슬을 끊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김영란법 통과를 압박한 것이다.
한국의 부패구조는 객관적 지표를 보더라도 후진국 수준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2014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발표했는데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에 55점으로 지난해와 같았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에서는 지난해와 같은 27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권력과 자본으로 뭉쳐진 부패구조는 필연적으로 농민 노동자 등 서민들에게 피해와 차별을 가져오게 되며 국가적으로는 선진국 진입을 가로막는다. 청렴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농민도 잘산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닐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김영란법과 농민 생존은 대립되어 있지 않으며 장기적으로는 농업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로 적용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벼랑으로 몰린 농민들이 김영란법을 우려하는 것이며, 국민들도 이러한 농민들의 우려를 단순히 정의의 개념으로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정치권은 김영란법 정착과 함께 농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근본 대책을 함께 수립해야 한다. 예를 들어 명절에 소비가 집중되는 품목은 연중 소비로 분산하는 대책이 있어야 하며, 농민들에게 안정적인 소득과 판로가 보장되는 근본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과 보수언론은 농민들의 목소리를 왜곡하여 김영란법을 누더기로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이면서 농업 대책은 고민도 않고 있는 실정이다.
궁금증을 갖는다. 김영란법으로 누가 잠을 뒤척일까? 명절에 떼돈을 버는 대형마트 등 유통기업이고, 농민과 갈수록 멀어져 돈벌이에 빠져 있는 농·축협이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조용하고 조선일보·동아일보·새누리당이 떠들고 있다.
박형대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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