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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해도 해도 너무하면 민란이 일어난다 / 송영길

등록 2015-08-24 18:47

나는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 후보로 나왔다가 1.8% 차로 낙선했다. 모든 걸 나의 부족함 탓으로 돌리고, 묵언수행하는 심정으로 1년 동안 중국 칭화대에서 공부하면서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지난 7월1일 귀국해 조희연 교육감의 항소심을 지켜보면서,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 묵언을 깨고 공개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조 교육감은 선거운동 기간 동안 고승덕 후보의 미국 영주권 보유 의혹 해명을 요구했는데, 이를 빙자해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는 것이 검찰의 기본 주장이다. 그러나 이미 기자의 트위트를 통해 의혹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정도의 질문도 못한다면 후보자 적격 검증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또 후보자 관련 의혹이 뭉게뭉게 일고 있을 때, 유권자는 어떻게 판단하란 말인가. 만약 이런 정도의 사안에 유죄판결이 내려진다면, “돈은 막고 입은 푼다”는 공직선거제도의 기본 개혁 방향과도 맞지 않는다.

영주권 보유 여부는 본인이 아니면 사실 확인이 매우 어렵다. 검찰조차 대검 국제자금추적팀과 외교부의 협조를 거쳐, 1심 개정 직전인 지난 3월26일에야 겨우 고 후보의 영주권 보유 유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진위 확인이 어려운 사안의 검증을 위해 당사자에게 물어보지도 못한다면, 그건 국민 모두에게 무조건 침묵하고 암흑 속에서 투표하라는 판결을 내리는 것과 다를 게 없다.

6·4 선거 때 인천시장 선거에서 자행됐던 극심한 흑색선전에 비하면, 조 교육감의 의혹 해명 요구는 그야말로 속된 표현으로 ‘약과’다. 묵언을 깨고 지난해 선거 때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내 억울함을 풀자는 게 아니라, 정치검찰의 선별 기소 행태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다.

유정복 당시 인천시장 후보는 세월호 참사 때 한 사람의 생명도 구하지 못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질책을 받은 안전행정부를 창립한 초대 장관 출신이다. 그럼에도 유 후보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인천시장에게 있다고 공격했다. 해양 안전사고와 관련된 선박 점검, 화물 고박 상태, 승선 인원 점검 등의 책임은 모두 해양수산부, 해양경찰, 해운조합에 있고, 자치단체장에겐 아무 권한이 없다. 이 점은 해사안전법 46, 47, 56, 58조 등에 명시되어 있다. 세월호가 단지 인천항에서 출발하였다고 해서 사고의 책임이 인천시장에게 있다면,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사고가 나면 그 또한 인천시장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유 후보는 또 기준 시점과 비교 시점의 부채 계산 기준을 달리해, 인천시의 부채가 7조원에서 13조원으로 늘어났다는 허위사실을 모두 18회에 걸쳐서 유포했다. 아시안게임 준비 이외에는 거의 토목공사를 벌이지 않은 내게 너무도 억울한 허위사실이었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조희연 후보의 경우 ‘주의경고’로 마무리한 반면, 유정복 후보에 대해선 검찰에 ‘수사 의뢰’를 했다. 사안의 경중이 그 정도로 달랐던 것이다. 그럼에도 검찰은 주의경고에 그친 조희연은 기소하고, ‘수사 의뢰’를 받은 유정복은 불기소 처분했다.

해상 안전사고에 대해서는 법에 명시되어 있어 조금만 확인하면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안전관리를 주관하던 장관으로서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유정복 후보가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은 무혐의 처분하고, 의혹이 있으니 해명하라고 요구했을 뿐인 조희연 후보는 기소당했다.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를 보면 한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도는 27%에 지나지 않는다. 조사 대상 42개국 가운데 39위로 거의 꼴찌다. 마약사범이 창궐하는 콜롬비아와 비슷한 수준이다. 참담한 현실이다.

사법부는 이런 현실을 보고 깊이 고민해야 마땅하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이야기가 서민들의 입에서 나오는 걸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기울어진 정치검찰의 잣대를 바로잡아, 사법부의 존재 이유를 국민들에게 보여주기를 애타게 갈망한다.

송영길 전 인천시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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