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주 전남 완도군 완도읍 해변공원로
하늘은 파랗다 못해 하얄 정도로 고운 빛깔을 뽐내고 있고 밖을 걷노라면 바람이 귓가를 간질인다. 이렇듯 밖은 가을이 다가오고 있지만 한국 학생들의 교실에는 봄조차 오지 않았다. 보충수업, 야간자습에 시달리며 해를 보지 못하고 패놉티콘의 죄수마냥 교실에만 갇혀 지내는 삶은 일상이 돼버렸으며 주말에는 봉사 아닌 봉사활동, 스펙 쌓기에 시달리며 자연스레 문화의 시작이자 끝인 광장에서 멀어져 동굴로 들어간다. 하지만 이날 나를 더 슬프게 했던 건 이 현실이 아니라 이런 푸념을 친구에게 하자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공부나 하라’는 대답이었다.
15살, 공자는 이 나이를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인 ‘지학’(志學)이라고 칭하며 학업에 힘쓸 것을 독려했다. 대한민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이 가르침을 잘 따라 초등학생들조차 과외에 학원으로 유년시절을 강탈당하고 있다. 이렇게 학생들은 15살이 채 되기도 전부터 열심히 ‘지학’하지만 대한민국 청소년 행복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이며 자살률은 최고이고 지금까지 과학 관련 노벨상 수상자 한 명 없다. 이쯤 되면 공자님의 말씀이 틀리신 건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대한민국 학생이 하는 공부는 학문이 아닌 훈련이다. 학생들은 진리 탐구라는 학업 본질의 존재와 뜻조차 알지 못한 채 수능문제를 푸는 기계가 되어간다. 이들이 훈련을 통해 얻는 것은 인간 지성의 발전이 아니다. 그들이 얻는 것은 권위에 복종하는 법과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주어진 할당량을 해나가는 피학증적인 인내이고 자신의 개성과 가치관의 획일화이다. 이런 사회에서 행위의 이유에 대한 성찰은 이단으로 치부되어 버리며 본질적으로 생각의 주체를 고립시키고 도태시킨다. 하지만 이런 무의미한 훈련에 꽃다운 10대의 청춘을 쏟아부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이 비정상적이라고 진심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사람은 없다.
사회가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도록 장려하지는 않더라도 허용조차 하지 않는다면 문제의식은 안에서 곪아 또 다른 병폐를 만들기 마련이고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효율 운운할 때가 아니다. 효율이 모든 가치 위에 군림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효율이라는 명목 아래 인간성이 침해되고 유린된다. 지금 현실이 심각히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기성세대들과 당사자인 청소년들에게 자각시켜야 한다. 한국 교육정상화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소수의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내놓는 교육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런 절실한 자각이 없기 때문이다.
과학철학자인 파울 파이어아벤트(1924~1994)는 인식론적 무정부주의를 주장했다. 이 이론의 핵심 내용은 과학의 발전은 합리적 이성의 검증과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닌 한 사람의 문제의식과 직관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회는 자연스레 발전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문제의식과 그 자각에서부터 시작해 투쟁하고 진보하는 것이며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정권이 결국 무너진 것도 문제에 대한 보편적 공감이 선행되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세상에 좋은 아픔이란 없다. 지금 한국 학생이 겪고 있는 이 아픔을 당연히 겪어야 할 성장통이라고 치부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지금 당장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더라도 이 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자각하고 있어야 진보의 가능성이라도 생기는 것이며 그것이 대한민국 교육정상화의 시작점이자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인간성 회복의 시발점이다.
이동주 전남 완도군 완도읍 해변공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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