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는 ‘민생제일주의’를 당의 정체성으로 표방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혁신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얼마 뒤 원내에선 “재벌 개혁”을 주제로 한 공개토론회가 열렸고, 앞선 6월에는 “경제정당위원회”가 출범했다.
특히 이번에 발표한 민생제일주의 노선에는 좌우의 이념적 노선에서 벗어나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당내 민생연석회의도 제안해놓은 상태다. 핵심 목표는 민생정당이다.
그런데 당대표와 혁신위원장, 실질적인 두 명의 당 컨트롤타워가 생각하는 경제 구상이 비슷한 것 같지만 서로 다르다. 경제정당은 상대적으로 재화의 생산 과정에, 민생정당은 재화의 분배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진보에 발전담론이 없기 때문이다. 발전담론 없는 진보는 복지담론 없는 보수보다 더 위험하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진보에 발전담론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후퇴한다. 민주주의는 이념이나 가치가 아니라 사회운영 시스템이다. 기차가 발전담론이라면, 민주주의는 기차가 지나가는 레일과 같다. 기차가 없으면 좋은 레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순간부터 민주주의는 투자 대상에서 사회적 비용으로 전락하고 만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 여론과 인식이 예전만 못한 데는 이러한 이유가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다.
둘째, 진보에 발전담론이 없으면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 예컨대 진보적 산업정책, 진보적 금융정책, 진보적 재정정책 같은 것이다. 기차에 실을 화물, 즉 구체적인 정책이 없는데, 기차와 레일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 순간부터 진보는 정책은 없고 대책만 있게 된다. 발전담론에 대한 진보의 안티테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마지막으로 진보에 발전담론이 없으면 경제정책이 파편화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제정당 만들기와 민생정당 만들기의 양립이 단적인 사례다. 프랑스의 소장 경제학자인 토마 피케티의 저서 <21세기 자본>이 작년 말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방대한 데이터를 활용하여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는 책이다.
피케티의 이러한 주장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정당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니라 새누리당이었다. 새누리당이 두 차례나 토론회와 세미나를 하고 나서야 새정치민주연합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경제정책이 파편화되면, 조직 노선이나 정책 노선은 해체주의적인 길을 걷거나 이와는 반대로 전체주의적인 길을 걷게 된다. 합리적인 입장과 태도는 주변에서 설득력을 잃고, 진보는 ‘극좌’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진보가 발전담론이 없으면, 가장 많은 고통을 겪는 계층은 서민이다. 이것이 진보가 발전담론을 소홀히 하면 안 되는 이유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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