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남북 고위 당국자 간의 합의는 결과적으로 아주 잘된 것이다. 우선 군사적인 큰 충돌을 예방할 수 있었고 오랫동안 꽉 막혀 있었던 남북관계가 잘 풀려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 간 합의사항을 준수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8·25 남북합의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남한의 확성기 방송 등으로 촉발된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상태가 북한의 대화 제의, 남한의 수용 과정을 거쳐 합의에 이르렀으나,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은 남북 간 국력의 차이에서 온 필연의 산물인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북한이 어떤 의도에서든 군사적 도발을 했고, 남한이 이를 용납하지 않고 적극 대응하니 북한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북한의 패배가 확실한 전면전쟁을 일으킬까? 남한도 승리는 하겠지만 민족적 큰 재앙이 될 전쟁으로까지 갈 수 있을까? 북한의 도발에 남한이 용납하지 않고 적극 대응하니 북한이 재빨리 대화를 제의하고 남한도 이를 수용하여 긴 시간 동안의 협상을 통해 흡족하지는 않지만 합의에 이른 것은 남북한 정부가 아주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누가 이겼니 졌니 하는 등의 평가는 적절하지 않다.
8·25 남북합의가 잘 이행되어 남북관계가 중단 없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남북 간 평화 정착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 앞으로도 북한의 도발이 있을 경우에는 적극 대응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져야 하고, 북한이 감히 도발을 생각할 수 없도록 강한 응징력을 갖추어야 한다. 국방비를 대폭 늘려서 군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과거 수십 년 동안 남한이 북한보다 수십 배의 군사비를 투입해오고 있는데, 아직도 북한이 남한을 군사력으로 위협하고 있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남한의 월등한 군사비가 월등한 군사력으로 전환되어야 평화가 확보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완전한 평화 정착에 이를 수 있다.
금년은 광복 70년이면서 동시에 분단 70년이다. 광복의 기쁨도 기억해야겠지만 분단의 아픔도 기억하고 이를 하루바삐 청산해야 한다. 진정한 광복은 남북통일을 달성하여 분단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는 이유를 불문하고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다. 분단이 오랫동안 지속되고 남북관계가 지지부진하다 보니 통일에 대한 피로감으로 통일회의론도 있지만, 민족적 당위성, 헌법적 근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걸쳐서 살펴보더라도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통일로 한 발자국씩 나아가다 보면 통일에 대한 관심도는 높아진다. 이는 과거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 통일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는 데 통일 교육, 홍보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평화통일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하고 최선의 방안이다. 그동안의 경험상 무력통일이나 흡수통일은 불가능하고 추구해서도 안 된다. 남북한 모두 그동안 수없이 평화통일을 얘기해왔지만 객관적이고 남북한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된 적이 없다. 평화통일은 남북 합의에 의한 통일을 말한다. 국력 격차가 큰 현재의 상황에서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은 가능하지 않다. 국력이 절대 열세한 북한이 통일에 합의하지 않을 것이고, 남한이 통일을 추진하면 흡수통일 시도라고 비난할 것이다.
평화통일은 북한의 국력이 남한과의 통일에 합의할 정도로 올라와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북한이 개혁, 개방을 해야 하는 것은 필수이고, 남한이 이를 지원하는 것은 충분조건이다. 동시에 남북이 서로 걱정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적극 진행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핵, 미사일 및 대남 도발 우려 등에 대한 구체적인 조처를, 남한은 북한의 흡수통일 우려에 대한 조처를 해야 한다.
평화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당사자는 남한뿐이다. 국력이 절대적으로 열세한 북한이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겉으로는 통일을 얘기할 수 있으나 체제 유지, 정권 유지에 급급하고 이를 담보하기 위해서 핵,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남한이 주도하는 평화통일의 기회는 남북 체제경쟁이 끝난 90년대부터 있어왔다.
통일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일관성 있는 평화통일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 남북 간 평화 정착, 평화 교류협력이 증대되어 자유왕래 등 사실상의 통일 상태를 거쳐 머지않은 장래에 남북 간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이 가시화할 것이다.
박경석 서울 은평구 불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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