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3일 검찰은 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 일명 ‘정은희 사건’에 대한 상고장을 대법원에 제출했다. 대구고등법원이 당시 외국인 연수생 신분이던 피고인에 대한 성폭행 혐의 등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피고인의 디엔에이(DNA)가 피해자의 속옷에서 발견된 디엔에이와 일치함에도, 공소시효 완성으로 처벌이 어려워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정은희 사건은 1998년 대구 구마고속도로 인근 굴다리에서 발생했다. 애초 경찰이 단순 교통사고 처리를 하면서 초동수사 부실 논란이 일었다. 피해자 가족이 발견한 속옷에서 나온 디엔에이가 2011년 채취된 피고인의 것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검찰은 기소 시점인 2013년을 기준으로 강간죄 공소시효인 10년이 이미 지났기 때문에 공소시효가 15년인 특수강도강간죄 혐의를 적용했다. 대구고등법원은 속옷에서 발견된 정액 디엔에이가 강간의 유력한 증거이나, 가방 등을 강취했다는 특수강도강간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공소시효란 특정 범죄에 대하여 일정 기간이 지날 경우, 공소 제기를 허용하지 않는 제도다. 검찰이 법원에 재판을 청구하지 않는 불기소처분 사유 중 하나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공소시효는 범죄행위의 종료 시점부터 진행한다. 공소시효 정지 사유는 공소 제기, 국외도주 및 재정신청의 세 가지로 제한된다. 이미 진행된 시효기간의 효력이 상실되고 새로 계산되는 공소시효 중단 조항은 없다. 최근 시행된 ‘태완이법’에 의해 살인죄에 한해서 공소시효 적용이 배제된다. 정은희 사건처럼 범인의 디엔에이와 일치하는 사람이 너무 늦게 발견되는 경우에는 기소조차 할 수 없는 제도적 맹점이 부각됐다.
미국은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탄력적으로 적용한다. 46개 주는 강간죄를 공소시효에서 배제하거나 디엔에이 증거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뉴욕주를 포함한 29개 주는 강간죄에 대한 공소시효 자체가 없다. 캘리포니아주를 포함한 25개 주는 디엔에이 증거 예외조항을 두고 공소시효를 연장한다. 캘리포니아주 형법의 경우, 범인의 신원이 디엔에이 검사에 의해 결정적으로 확인되는 시점부터 공소시효가 진행되는 ‘디스커버리 룰’이 적용된다. 이 경우 공소시효의 연장 편차가 크다. 짧게는 1년부터 길게는 12년까지 다양하다. 일리노이주를 포함한 5개 주는 디엔에이 일치 판정이 나올 경우, 범죄행위 종료 시점과 관계없이 언제든지 기소할 수 있다.
디엔에이 증거로 범죄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경우, 공소시효를 연장하기 위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형사소송법 제252조에 관련 조항을 신설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디엔에이 테스트로 신원이 결정적으로 확인될 때도 공소시효의 기산점 중 하나로 보는 것이다. 기존의 공소시효 기간은 그대로 적용하되, 기산점을 조정하는 디스커버리 룰을 도입하는 것이다. 정은희 사건에서 강간죄의 경우, 디엔에이 일치 판정이 나온 2012년을 기점으로 해서 10년, 즉 2022년에 만료되는 것이다.
안준성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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