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이 바쁘시죠?”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바쁘다”는 말을 “잘나간다”는 뜻으로 착각하는 수가 많다. 그래서 메모장에 빼곡하게 일정을 적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그러나 “바쁘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면 한번쯤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실상은 “왜 이리 무심해?”라는 원망이 담겨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쁘다”는 말은 좋은 핑곗거리가 될 수 있지만 정말 그럴까?
올해로 90을 넘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최근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이 뇌로 전이되어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는 가운데도 여전히 성경교실의 일일교사로 “품위 있는 전직 대통령”의 귀감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외국 정상 만찬같이 중요한 약속이 없는 한 저녁 6시30분에 칼퇴근하여 가족과 시간을 같이 보낸다고 한다. 이른바 ‘일과 가정, 정신의 균형’(Work, Life & Spirit balance)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소홀히 하기 쉬운 분야가 자기성찰과 건강 관리다. 그런 바쁜 현대인에게 내가 권하고 싶은 최고의 처방은 걷기다. 걷기는 신체의 건강이자 정신적 ‘묵상’(meditate)이기도 하다. 올해 들어 잘한 결심 가운데 하나는 매일 1만보 걷기다. 성인 보폭으로 8㎞에 해당하는 거리여서 바쁘고 문명의 이기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에게는 쉽지 않지만 거기에는 몇가지 비법이 있다. 걷기 앱을 통해 매일 기록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짬을 내서 걷는 것이다. 저녁에 가족과 걷다 보면 빠지는 뱃살만큼 애정이 차오른다. 파워워킹이니 고급 트레킹화는 모두 사족이다. 다만 하루도 빠지지 않겠다는 결심이 가장 중요하다.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니고 돈 되는 것도 아닌데 왜 굳이 꼭 1만보를 고집하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이렇다.
“너무 바빠서 걷습니다!”
황용필 남서울대 리더십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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