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나는 대한민국 국회로부터 사과받고 싶다 / 박김영희
나는 대한민국 국회로부터 사과받고 싶다 / 박김영희
지난 9월8일 대한민국 국회는 본회의에서 2012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였다는 단 한 줄의 경력을 문제 삼아 새정치민주연합이 추천한 필자 박김영희의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 임명동의안을 부결(찬성 99, 반대 147, 기권 14)시켰다. 나의 삶의 과정이 담긴 다른 경력은 보지 않고 오직 단 한 줄만으로 박김영희를 국가인권위 비상임위원 부적합자로 낙인찍은 대한민국 국회에 물어보고 싶다.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누군가 설명해주었으면 좋겠다. 인권위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통합진보당 경력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대한민국 국회의 그 누구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대답은 하지 않고, 나를 부적합자로 낙인찍고 침묵하고 있다. 민주주의 가치를 지향하는 대한민국 국회는 국민 한 사람조차 이해시키지 못하는 결정을 하고서도 사과 한마디 없다. 대한민국 국회가 부결이라는 결과를 만든 이유를 나에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나는 사과를 받아야 한다.
나는 대한민국 국회로부터 사과받고 싶다.
나는 20대 중반까지 이력서라는 양식에 하얀 여백이 많은 사람이었다. 남들은 당연하게 그 여백에 채워져 있는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이라는 글자조차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겨우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다는 정도…. 그래서 어느 자리에서 말 한마디도 자신 있게 하지 못했다. 장애를 가진 나는 학교에 갈 수 없었기에 집에서 할머니에게서 한글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사회를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검정고시 공부를 했다. 기나긴 공부하는 세월과 여러 힘든 일을 겪으며 매년 한 과목씩 합격했다. 그러나 고생스러움과 아픔들의 대가는 이력서 한 줄이었다. 초등과정 마침. 또 한 줄, 중학과정 마침. 이렇게 이력서의 여백을 채워왔다.
나의 이력서에는 남들처럼 어느 대학, 어느 대학원 석사·박사, 저서는 몇 가지, 이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장애인, 특히 장애 여성의 권익을 높이기 위한 단체 활동과 투쟁 경력이 하나하나 이력서를 채웠다.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과 장애인이동권연대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과 활동보조 서비스 제도화 그리고 장애인시설의 문제에 대응하는 공대위와 형제복지원 대책위 등 여러 기구에서 공동대표나 집행위원장, 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나의 이력서를 보면 온통 투쟁의 연속이다. 시멘트 바닥 위에서 기었고, 삭발을 했고, 단식으로 피를 토하며 병원에 실려 갔다. 유치장 안에서 잠든 날도 있었다. 가진 것은 장애 있는 몸뿐이라서 온몸으로 우리의 권리를 만들어왔다. 이렇게 작성된 이력서 한 줄 한 줄은 나의 피와 땀으로 채워졌다. 이런 경력은 의원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둔 어느 날, 장애운동 진영으로부터 진보정치 운동을 해보라는 제안이 왔다. 누구보다 장애인의 참담한 현실을 알고 있고, 현장투쟁의 성과가 더 좋은 제도화로 이어져야 하니 장애 여성인 내가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다 누군가는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하기로 결심하였다. 이 또한 내가 바라는, 장애인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운동의 연속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2008년 민주노동당에 당원 가입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이 나눠지면서 나도 당을 떠나 이후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바로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비례 1번으로 출마했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총선이 끝난 뒤 진보신당은 새 지도부를 선출하였고, 당내 경선을 통해 부대표로 당선되어 활동하였다. 2012년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이 통합해 비례대표 선출을 하였고, 나는 17번으로 19대 총선에 출마했으나 비례대표 선출을 두고 부정선거 논란이 일었다. 이후 나는 정치운동에 대한 여러 고민을 안고 후보를 자진사퇴했다. 2012년 통합진보당을 탈당한 뒤 장애운동으로 돌아와 어느 정당에도 가입하지 않고 오직 장애운동에만 진력을 다했다. 이것이 국회에서 나를 비상임위원 부적격자로 낙인찍은 경력의 전부다.
장애인 인권침해가 있을 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때, 장애인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국가인권위원회다. 인권위에 접수되는 진정 가운데 장애인 차별 관련 사항이 해마다 50%를 넘는다. 이러한 장애인 관련 진정에 대해 장애감수성을 가지고 장애인 입장에서 차별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국가인권위원회가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인권위 상임위원 중에는 장애인이 없다. 그러다 보니 장애인 진정 사건 대부분이 기각되거나 가해자와의 합의 결정 등이 나온다. 이에 장애인들은 실망하고 인권위를 기피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내가 비상임위원에 추천되는 데 동의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비상임위원이 되어 완벽하게 장애인, 소수자 차별 문제를 고쳐가겠다고 말할 순 없으나 낮은 시선으로 세상을 봐온 삶의 관점으로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생각으로 새정치 쪽 추천에 동의하여 추천위원회에 서류를 제출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선정위 결정으로 나를 추천하게 됐다고 국회에서 브리핑까지 했다. 그런데 이후 의원총회에서 추천이 보류됐다는 소식을 기자가 알려줘서 알게 되었다. 그 뒤 선정위가 다시 회의를 해서 ‘자격에 문제가 없다’고 확인했다. 그리고 국회에서 부결되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누구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비겁하고, 새누리당은 비열하다. 양당은 나에게 사과해야 한다. 개인 박김영희를 위해서가 아니라 추락한 우리의 인권을 위해서라도 국회는 사과해야 한다. 사망신고를 낸 우리 인권을 소생시켜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대한민국 국회로부터 꼭 사과를 받아야겠다.
대·한·민·국 국회는 사과하라.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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