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자유를 보장하라 문화연대, 서울연극협회, 한국작가회의 소속 예술인들이 22일 오후 서울 대학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예술검열 중단과 예술의 자유 보장을 촉구했다. 참석 예술인들은 손팻말 등을 들고 문화예술기금 편파지원에 항의했다. 한편 이날 연극계에선 이번 사태에 대해 국회 청문회 개최 및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등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가 발표됐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김재엽 연출가 기고
김재엽 연출가
예술가에게 자기검열 강요
그것이 바로 정치적 행동 공모때 없던 기준 꺼내든
예술위의 공적인 언어에
공적인 책임감이 없다 지원하되 개입 않는다?
‘개입하되 지원 안한다’는
어불성설 문서 작성 애쓴다 정작 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커다란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다. “예술이 세상을 바꿉니다. 예술가의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통해 국민이 문화로 행복한 세상을 아르코가 만들어 가겠습니다.” 응? 이러한 모순된 언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또한 문화예술위원회는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심의과정을 해명하며, 이윤택 연출가의 경우, “이미 상당 규모의 제작비가 소요된 공연을 고려했다”는데, ‘애초에’ 이런 기준이 있었다면, ‘애초에’ 최근 몇 년간 어떤 지원을 받았던 분들은 자격요건이 되지 않는다는 공지가 있어야 했다. 공모시 심사기준과 자격요건에는 없었던 사항들이 결과에 고려되었다는 비상식적인 과정은 응모자들에게 심각한 소외를 유발한다. 지난번 한국공연예술센터의 ‘서울연극제 대관탈락 사태’에서도 공모시 심사기준과는 다른 심사기준으로 탈락했다는 비논리를 제시했다. 시작과 끝이 일관되지 않다는 것은 그들의 공적 언어에 공적인 책임감이 없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이윤택 연출이 최근 얼마의 지원을 어떻게 받았느냐는 사건의 핵심이 아니다.(게다가 국정감사장에서 장관의 입에서 나온 언어는 예술가의 명예를 훼손할 만큼 사실과 달랐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그들의 비상식적인 운영상의 문제이다. 그러나 책임을 회피하려는 그들의 해명에는 지원과 관련하여 연극인 내부의 박탈감과 적대감을 조장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 결국 문화예술위원회는 ‘최종 결정권이 예술위원회 전체회의에 있다’며 권위 없는 권력을 내세운다. 앞으로 이러한 입장이 견지된다면, 이번 ‘창작산실’ 사건처럼 진실에 입각한 심사위원의 양심적인 행동과 예술가의 용기있는 고백조차 불가능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반문하듯 마지막 문단을 남긴다. “예술위원회는 현장예술인 중심의 자율기관으로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지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고려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장예술인들이 문화예술위원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다르다. 특히 지원사업 심사결과에 관한 정보를 비공개 개인열람으로 바꿔놓으면서 기본적인 정보마저 차단해놓고 있는데, 무슨 근거로 현장예술인 중심의 자율기관이라고 자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심사위원조차 합의하기 어려운 부조리가 드러나는데, ‘사회적 합의’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아마도 그 ‘합의’는 예술분야 관료 몇 사람의 합의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예술가의 정신에 개입하지 말라. 생각은 자유다. 지금 예술위원회가 하고 있는 행동에 적합한 한국어는 “지원하되 개입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개입하되 지원하지 않는다”가 맞는 표현이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사용하는 언어가 점차 공신력을 잃어가는 시대에 어느새 공무원들의 언어가 민주주의적 소양이 부족한 정치인들의 언어를 닮아가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이 한국어를 더럽히고 있다.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의 언어가 좀더 진실하게 고민하고 진지하게 사유한 흔적이라도 보여야 한다. 이렇게 불성실한 문화예술위원회의 언어는 불신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사회적인 논란은 바로 당신들이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어불성설’의 문서를 작성하느라 고민하고 있을 모든 공무원은 불쌍하다. 극작가·세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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