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8월 휴가 중이던 해군 장병이 상관의 명령으로 벌초 작업을 하던 중 예초기에 튕겨 나온 비석 조각에 찔려 한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안구 이식 수술조차 불가능한 상태로 11년을 흘려보낸 뒤 뒤늦게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로부터 수차례 거부당하고 말았다. 부대의 명령하에 수행한 작업이었으나, 휴가 중 사고였기에 ‘사적 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국가가 국민에게 행한 이 처분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사실’에 비추어 보면 그렇다. 그러나 ‘진실’을 비춰 보면 그렇지 않다. 표면적 사실로는 ‘적법’한 처분이더라도 내면적 진실을 보면 ‘부당’한 처분이라는 말이다. “사실이 진실을 막지 않도록 하라.” 미국의 시인 마야 앤절로가 남긴 말이다. 연간 2만5000건에 이르는 다양한 행정심판 청구 사례, 그 속에 담긴 진실의 사연을 접하면서 이 명언을 마음에 새긴다.
행정심판은 위법성만 따지는 행정소송과 달리 처분이 적법하더라도 결과가 심히 부당하면 그 처분을 취소할 수 있다. 사실의 이면에 담긴 진실의 실체를 올곧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행정소송과 행정심판의 가장 큰 차이다.
행정심판은 평균 처리 기일이 70일 정도로 비교적 짧은데다 비용이 전혀 들지 않아 누구나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행정청은 심판 결과에 불복할 수 없어 절차가 단심으로 간편히 끝나고, 행여 청구인 입장에서 심판 결과가 좋지 않으면 소송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부당함을 호소할 기회를 한 번 더 얻게 되는 셈이다.
행정심판은 1985년 10월1일 태어나 지난 30년간 조금씩 성장하면서 다듬어지고 여물어져왔다. 과반수를 외부위원으로 구성하고 전문가 풀(pool)을 두어 공정성에 독립성, 전문성까지 갖췄다. 처분 취소뿐 아니라 변경이 가능하고, 행정청에 처분을 명하거나 직접 처분을 할 수 있어 실효성도 높다.
내년에는 올해로 3년째 준비하고 있는 온라인 행정심판 시스템 구축도 마무리된다. 이제 누구나 어디서나 행정심판 포털사이트에 접속하여 안내에 따라 쉽게 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행정심판에 대한 인지도는 지난해 기준 44.4%에 불과하다. 절반의 국민이 이를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연장도 손에 잡히는 데 있어야 녹슬지 않듯, 행정심판도 국민의 뇌리에 쉽게 떠오르는 존재여야 권익 구제 역할을 더욱 널리 수행할 수 있다. 해답은 처음부터 정해진 셈이다. 행정심판이 갈 길은 국민을 향해야 하고, 행정심판이 자리할 곳은 국민 곁이다. 온라인 행정심판을 통해 더 많은 국민이 국가로부터 침해받은 권익을 더 적극적으로 구제받기를 기대해본다.
홍성칠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겸 중앙행정심판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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