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어원에서는 2015년 6월15일자로 그동안 부정적으로 사용하던 ‘너무’라는 부사를 긍정적 의미로 사용할 수 있게 허용하기로 했다. 이 조치로 인하여 비슷한 뜻을 가진 부사들, 이를테면 ‘무척’(다른 것과 견줄 수 없이), ‘매우’(보통 정도보다 훨씬 더), ‘대단히’, ‘훨씬’ 같은 단어들은 현실의 말글살이에서 사라질 것이다.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이런 표현이 사용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제 모든 시민들이 마음속 한구석에 품고 있던 부담감마저 떨쳐버리고 ‘너무’를 사용할 테니까.
물론 국립국어원에서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언어생활이란 것이 현실을 너무 무시할 수도 없는 것이고, 시대가 변하면서 언어생활이 변해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잘못된, 그리하여 우리말과 글의 발전을 가로막고 나아가 퇴보를 조장하는 행위까지 허용하기 시작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글의 100년 후는, 100여년 전 존재하던 <독립신문>을 지금 이 순간 읽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텔레비전을 켜보라! 그러면 ‘할께요’, ‘룩킹삼진’, ‘먹방’, ‘보여집니다’ 같은 틀렸거나 국적불명의 표현들이 이른바 ‘공영방송’이라는 곳에서 버젓이 사용되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말을 공영방송 아나운서들을 포함해 많은 시민들이 사용하니 ‘현실적’ 이유를 들어 허용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 시민들은 우리말을 잘못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그 대신 영어 철자를 틀리거나 수동태를 틀리는 것에 대해서는 인격이 상처받는다고 여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국립국어원은 우리말과 글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요, 5천년 문화를 지켜야 할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한다. 국립국어원은 우리말의 파괴와 왜곡에 앞장서면서도 당당한 공영방송 관계자들과 시민들에게 당당히 외쳐야 한다. “당신들은 틀렸습니다. 당신들은 우리말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말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며 외국어라니요? 부끄러운 줄 아십시오.”
김흥식 <한글전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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