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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왜냐면] 독단의 커뮤니케이션, 삼성 / 임자운

등록 2015-10-07 18:47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남편이 갑자기 집 나갔다가 돌아와서는 ‘통닭 사왔으니 이거 먹고 없던 일로 하자’고 하면 열 받는 거거든요.”

지난주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있었던 ‘직업병 피해자 이어 말하기’ 행사에서 손성배씨가 했던 말이다. 손성배씨는 삼성반도체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손경주님의 아들이다. 최근 삼성의 태도를 비유한 발언이었다. 하다못해 부부싸움에서도 그러면 안될진대, 삼성은 지금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1년 전 삼성은 교섭 상대인 반올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정 절차 도입을 강행했다. 일방적으로 ‘조정위원회 출범’을 발표하면서 “반올림 쪽이 조정에 참여해 모든 현안을 성실하고 투명하게 논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조정 절차를 통해 지난 7월 조정권고안이 발표되자, 이번에는 조정 ‘보류’를 요청하더니 급기야 권고안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보상절차를 강행하고 나섰다. 삼성의 내부 기구(보상위원회)가 주도하는 보상 창구를 열어 놓고 보상 신청 기한까지 정해 피해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피해자들에게 개별 연락을 돌려 보상 신청을 권유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 과정에서 삼성이 강조했던 “성실하고 투명한 논의”는 물론 없었다.

대화를 통해 사과, 보상,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자던 삼성이 보상의 대상과 내용, 절차까지 전부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고 돌아선 것이다. 재발방지 대책에 대하여도 “내부 관리시스템 강화”만을 내세우고 있으니 결국 알아서 하겠다는 태도다. 삼성 쪽 교섭단은 삼성전자 내 커뮤니케이션팀이 주도하고 있지만, 정작 교섭 상대와의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은 전혀 없다. ‘독단’의 연속이다.

삼성은 조정권고안의 무엇이 그렇게 싫었던 것일까. 조정권고안은 이 문제의 ‘사회적 해결’을 강조했다.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 사업을 총괄하는 ‘사회적 기구’(공익법인)를 설립하도록 했고, 삼성은 사업 수행에 필요한 재원을 기부하도록 했다. 문제는 사회적 기구의 성격인데, 조정권고안은 당연히 구성과 운영 면에서 삼성전자와 독립된 제3의 주체를 설정했다.

결국 삼성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누군가가 피해자들을 만나고 보상 내용을 정하고 공장의 안전관리 실태를 들여다보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 누군가가 보상 신청 현황을 공개함으로써 직업병 피해 규모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추측을 돕는 문건이 있다. 2년 전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의 안전관리 실태를 진단한 보고서인데, 공장 내 ‘안전보건 문화’와 관련해 이렇게 적고 있다.

“회사의 안전보건 수준이 높은 것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이 있으며, 외부 지적에 대해 상당히 방어적이고 내부의 문제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문화가 강함.”

자신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부 문제를 노출하지는 않으려는 태도. 삼성은 직업병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조차 이토록 모순된 두 정서를 고집하고 있다. 그 때문에 모든 것을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상황에 놓고자 한다. 동시에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을 지나치게 두려워한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삼성전자의 그러한 독단적인 사고방식이 곧 황유미의 사망을 가져왔고, 반올림에 알려진 수만 220명이 넘는 피해자들을 만들었다. 아울러 삼성은 아마도 이번 교섭을 통해 직업병 문제가 일단락되기를 바라겠으나, 다시금 그 독단이 문제를 원점으로 돌릴 것이고 더 큰 사회적 비난을 불러올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보상 절차가 개시되었음을 알리면서도 “우리 반도체 생산라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삼성이 직업병 문제에 대응하며 지겹도록 반복했던 말이고, 불과 2년 전 한 사업장에서만 2000여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적발된 기업이 하기에는 너무 뻔뻔한 말이다. 또한 누군들 의아하지 않겠는가. 그토록 자신만만하다면서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지.

임자운 변호사·‘반올림’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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